“하나, 둘, 셋.”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며 눈 한 번 깜빡하던 찰나에 시속 100킬로미터(㎞)의 속도로 서킷 위를 폭발적으로 뚫고 달렸다. 포르쉐의 3세대 신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인 카이엔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달 13일 경기도 용인스피드웨이에서 카이엔의 최상위 모델인 터보 GT가 자랑하는 ‘런치 컨트롤’ 기능을 경험한 순간, 마치 한 마리의 야생마에 올라탄 기분이 들었다. 정지 상태에서 제로백(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3.3초면 충분했다. 고개가 뒤로 젖힐 만큼 빠르게 내달리던 순간 급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불편함 없이 안정적인 제동 능력을 선보이며 거친 엔진음을 몰아쉬었다.
포르쉐 고유의 고성능 스포츠카 DNA가 SUV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던 순간이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포르쉐 관계자는 “런치 컨트롤은 차량에 무리를 주기 때문에 일부 경쟁사는 사용 횟수에 제한을 두고 있다”며 “이와 달리 카이엔은 해당 기능을 반복해서 사용해도 무리가 발생하지 않는 차량”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실제로 이날 약 20명 넘는 언론사 기자들이 순차적으로 런치 컨트롤을 직접 사용했는데도 카이엔은 처음부터 끝까지 뛰어난 성능을 유지하며 일정을 소화했다.
카이엔은 포르쉐의 대표적인 준대형 SUV다. 2002년 첫 출시 후 글로벌 누적 기준 100만 대 넘게 팔리며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상반기 국내에 인도된 카이엔은 총 3000대로, 이는 포르쉐코리아 전체 판매량의 약 절반에 해당한다.
지난 8월 출시한 3세대 신형 카이엔은 이러한 높은 인기에 힘입어 포르쉐 브랜드 역사상 가장 대대적인 개선을 거쳤다. 현장에서 마주한 신형 카이엔은 이를 증명하려는 듯 공격적인 인상으로 시선을 잡아끌었다. 새로운 보닛과 개선된 디자인의 헤드라이트는 차량의 전폭을 강조했고, 후면부의 3차원의 레일라이트와 번호판 홀더가 있는 리어 에이프런는 리어 엔드 디자인을 완성했다.
차량 내부에는 전기차에서 볼 법한 기능과 디자인 요소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우선 운전석에는 가변형 디스플레이 옵션을 갖춘 12.6인치 풀 디지털 계기판이 처음으로 적용됐다. 대시보드에는 통합된 12.3인치 센트럴 포르쉐 커뮤니케이션 매니지먼트(PCM)를 갖춰 각종 기능을 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했다.
조수석에 대한 배려도 돋보였다. 조수석에는 10.9인치 디스플레이가 옵션으로 제공된다. 조수석 탑승자는 이를 통해 차량 퍼포먼스 데이터를 확인하거나 인포테이먼트 시스템을 제어할 수 있다. 또 영상 콘텐츠 스트리밍 기능도 선택할 수 있다. 운전자가 주행 중에 조수석의 디스플레이로 방해받지 않도록 화면을 가리는 특수 필름을 부착하는 등 세심함도 놓치지 않았다.
일반 도로에서 페달을 밟으니 ‘정숙함’이라는 색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서킷 위에서 런치 컨트롤을 가동했을 때 승차감은 스포츠카에 가까웠다면, 일반 도로에서는 고급 세단이나 전기차와 같은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포르쉐는 신형 카이엔의 서스펜션에 가장 큰 비용을 투입했다고 한다. 이전 모델 대비 개선된 서스펜션은 역동적인 주행 상황에서도 차체 움직임을 줄이며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하게 했다. 저속 주행에서 느껴지는 안정감, 코너를 돌 때 부드럽게 빠져나가는 주행감도 운전하는 재미를 한층 높였다.
신형 카이엔에는 새로운 공기 정화 시스템이 적용된다. 내비게이션 데이터를 활용해 차량이 접근하는 터널 입구를 감지하고 자동으로 공기 재순환 기능을 활성화하는 방식이다. 센서가 선택적으로 공기 중의 미세먼지 입자 농도를 감지하고, 필요시 미세먼지 필터를 여러 번 통과시켜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 카이엔은 일반형과 카이엔 쿠페, 카이엔 터보 GT 등 3종으로 구성된다. 판매 가격은 부가세를 포함해 각각 1억 3310만 원, 1억 3780만 원, 2억 6190만 원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