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가 두렵게 느껴진다. 자존감이 0이 됐다.’
이달 극단 선택을 한 전북 초등교사의 유서 내용이다. 경기도의 한 초등교감은 지난해 말 학교에서 근무 도중 쓰러져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그 교감은 학교폭력 사안 처리, 학부모 민원 대응, 교사 병가·휴직에 따른 대체 인력 채용 등으로 주말도 없이 일했다고 한다.
최근 잇따라 극단 선택을 한 교원들은 심각한 교권 침해와 함께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교원들의 비본질적 업무가 새로이 주목받으며 과감한 개선·폐지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교원이 수업·생활지도 말고 다른 업무를 얼마나 하겠느냐 질문을 던지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 그 이상이다.
먼저 학교에는 교원 외에 돌봄·방과후학교·영어교육 등을 위한 강사 및 원어민 교사 등이 있다. 이들의 채용 계획 수립, 품의, 공고, 복무 관리, 강사료 계산 등을 주로 교사들이 한다.
심지어 원어민 교사 휴대폰 구입, 청소 서비스 알선 등 허드렛일까지 도와야 한다. 최근 한 교육청은 ‘원어민 교사 생활용품점 인솔’ 등을 담은 안내 공문을 교사들에게 보내 원성을 샀다.
CCTV 관리와 미세먼지 및 정수기 관리, 학교 운동장 성분 조사, 하다 하다 화장실 몰래카메라 탐지까지 교사가 맡기도 한다. 유아 학비 카드 수납·신청·정산, 교실 인테리어 입찰 선정, 학교 주변 유해 업소 점검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올해 5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런 업무에 교사들이 쏟는 시간만 일주일에 7.23시간에 달했다. 닷새 근무 중 꼬박 하루를 할애하는 셈이다. 교사가 수업을 준비하고 연구할 시간을 빼앗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더욱이 교육과 무관한 비본질 업무는 교사의 자존감을 무너뜨린다. 이런 업무 때문에 교실로부터, 학생으로부터 멀어지는 매 순간 교사들은 정체성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져든다. 견디다 못한 교원들이 아이들 곁을 떠나고 있다. 비본질적 업무는 폭언·폭행 못지않게 심각한, 일상적으로 가해지는 교권 침해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10월에는 국정감사, 11월에는 시도 행정사무감사가 이어진다. 또 얼마나 많은 긴급 보고 공문에 교사들이 마음을 졸이고 행정 업무에 치이는 일이 되풀이될지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수업·생활지도·상담·평가 외에는 교원이 맡지 않도록 해야 한다. 비본질적 업무와 행정 잡무는 과감히 폐지하거나 교육지원청, 행정 전담 인력·조직에 대폭 이관해야 한다. 범정부 차원에서 그 방안을 만들고 당장 추진해야 한다. 그것이 교사를 교실에, 아이들에게 돌려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