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라고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플라스틱이 계속 늘어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건 자명합니다. 플라스틱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고 만들어진 플라스틱은 썩지 않고 있으며 그럼에도 우리는 플라스틱을 쓰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황성연(사진) 경희대 식물환경신소재공학과 교수는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플라스틱 정책의 근본을 ‘플라스틱을 줄이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정부가 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며 “다만 현재 플라스틱 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다 보니 분명한 길을 보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황 교수가 지적하는 정부의 실책은 생분해 플라스틱 관련 정책이다. 생분해 플라스틱은 보통 플라스틱과 달리 미생물이 풍부한 토양에서 빠르게 썩는 플라스틱을 말한다. 환경부는 2003년부터 퇴비화 시설에서 6개월 안에 90%가 분해되는 생분해 플라스틱에 친환경 인증을 해줬지만 지난해 11월 정책 방향을 전환했다. 친환경 인증에서 기존 생분해 플라스틱을 제외하기로 했으며 기존 인증을 받은 생분해 일회용 봉투 등도 2024년까지만 사용하도록 했다. 생분해 플라스틱이 기대와 달리 잘 썩지 않는다며 ‘그린워싱(친환경 위장)’ 아니냐는 논란이 일어서다.
황 교수는 이런 정부 판단에 오류가 있다는 입장이다. 황 교수는 지난해 9월 학교로 오기 전까지 한국화학연구원 바이오화학연구센터장을 지낸 국내에서 손꼽히는 바이오 플라스틱 전문가로, 친환경 플라스틱 관련 토론회나 학회의 초청 일순위로 거론되고는 한다. 그는 “준비가 완벽하게 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새로운 기술의 싹을 자르려 한 것”이라며 “극단적으로 말하면 석유계 플라스틱 비닐을 만드시는 분들은 장사 잘 하고 있는데 생분해 플라스틱이라는 친환경적 시도를 해보려 했던 기업과 사람들만 된서리를 맞은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생분해’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오해가 크다고 덧붙였다. 환경부는 업계가 반발하자 올 1월 엄격한 생분해 기준을 새로 내놓았다. 퇴비화 시설이 아닌 일반 토양에서 24개월 안에 90% 이상 분해돼야 한다는 것이다. 황 교수에 따르면 생분해 플라스틱은 단단한 플라스틱의 분자구조 속에 미생물이 분해할 수 있는 ‘느슨한 고리’ 하나를 끼워넣어 미생물이 풍부한 토양에서 빠르게 분해되도록 한 소재다. 그렇기에 온도·습도 등 미생물이 잘 자라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 생분해의 필수 조건일 수밖에 없다. 일반 토양에서도 미생물이 있다면 분해야 되겠지만 속도는 훨씬 느려진다. 황 교수는 “기준을 높여 더 빠르게 잘 분해되는 플라스틱을 만들면 좋은 것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럴 경우는 ‘플라스틱 제품’으로서의 가치도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상온의 아무 장소에서나 수년 내에 썩어버리는 플라스틱이 과연 상품 가치가 있겠냐는 의미”라고 반문했다.
그렇다고 황 교수가 ‘생분해만이 정답’이라고 외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플라스틱 감축과 더불어 중요한 목표는 “모든 플라스틱을 잘 관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모든 플라스틱은 비록 친환경 원료로 만들었다고 할지라도 소각 시에는 독성 물질이 나온다. 첨단 장비로 반감기를 분석하지 않는 이상 원료가 석유계인지, 바이오 베이스인지 구분도 어렵다. 또 플라스틱 재활용은 생각보다 더 까다롭다. 소비자들은 흔히 배달 용기로 사용되는 플라스틱을 깨끗이 닦아 내놓으면 재활용이 되리라 기대하지만 그렇지 않다. 황 교수는 “원료를 혼합하면 재활용이 어렵고, 또 원래 뭘 담아서 썼는지 알기 어려운 플라스틱은 차후 식품 용기 등으로 재활용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우리 리사이클 정책이 선진국인 독일이나 일본처럼 완성도 있다고 보기 어렵고, 재활용이 되면 좋지만 그렇지 않아 플라스틱이 계속 쌓이는 상황에서 비교적 잘 썩는 생분해 플라스틱 생산을 확대하는 정책을 병행하는 편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유럽에 탄소세가 도입됐는데 과연 플라스틱세는 나오지 않을까요. 우리도 지금부터 플라스틱을 줄이려는 준비와 노력을 해야 다가올 미래에 대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생분해의 효율 문제는 어느 정도 산업이 성장한 뒤에 따져도 늦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