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당한 503명, 122억 되찾는다

해외로 나갈 뻔한 피해금 122억
가상자산 거래소에 동결됐다가
보이스피싱 당한 503명 품으로

사진 제공=서울경찰청

“가상자산으로 불법 자금을 세탁한 사건에 당신의 계좌가 이용됐습니다. 자산 보호를 위해 내가 보낸 앱을 설치하고 지정한 계좌로 돈을 보내세요.”


경기도 파주시에 거주하는 피해자 최 모(50) 씨는 2018년 6월 검사를 사칭한 피싱범으로부터 이 같은 전화를 받았다. 최 씨는 놀란 마음에 적금과 대출로 약 4억 4000만 원을 마련했고 피싱범의 은행 계좌로 돈을 이체했다. 최 씨가 사기를 의심했을 때는 피싱범이 이미 피해금 전액을 가상자산거래소로 빼돌린 후였다.


경찰에 보이스피싱 사기를 신고하기는 했지만 이미 범죄자의 계좌에는 남은 돈이 없었다. 또 최 씨는 당시 피해금이 거래소로 넘어갔다는 사실조차 몰랐기 때문에 회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이달 경찰로부터 “피해금 중 2억 3900만 원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최 씨는 “심한 자책감으로 가족이나 주변인들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내용이) 알려질까 전전긍긍하며 살았는데 이제야 자책감에서 벗어나게 됐다”며 기뻐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금융범죄수사대는 27일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금이 이전돼 거래가 정지됐던 가상자산 계정에서 약 122억 원의 피해금을 확인한 뒤 약 4개월에 걸친 계좌 추적을 통해 범죄 피해자 503명을 특정해 돈을 환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 씨의 사례처럼 현재까지 경찰의 도움으로 피해 금액을 전액 혹은 일부 회복한 피해자는 모두 103명으로 약 40억 원 정도를 돌려받았다.



자료=서울경찰청

경찰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은행 계좌로 이전된 경우 사기 피해 신고 접수와 동시에 해당 계좌나 연결 계좌에 이르기까지 모두 지급이 정지된다. 만약 여러 은행을 거쳐 자금이 이전되더라도 은행 간 정보 공유를 통해 피해금이 보관된 최종 금융회사가 피해자에게 피해금을 환급해줄 수 있다.


그러나 최 씨처럼 은행 계좌를 거쳐 가상자산거래소에 피해금이 이전된 경우 거래소는 피해자 정보를 은행으로부터 공유받지 못해 환급 대상인 피해자를 알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피해자 역시 거래소로부터 피해금 입금 사실을 통지받지 못해 환급을 요청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자료=서울경찰청

이에 따라 가상자산거래소는 은행으로부터 피싱 범죄 피해금이 거래소 계좌로 입금된 사실을 통지받게 되면 해당 거래와 연결된 거래소 계정을 자체 약관에 의해 동결하고 있으나 법적 근거 미비 등으로 정작 피해자에 대한 정보를 은행으로부터 제공받지 못해 동결된 자금을 환급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2017년 이후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5곳이 피싱 범죄로 인해 동결한 계정은 339개, 미환급 피해금은 122억 3000만 원에 달했다.



사진 제공=서울경찰청

경찰은 올해 4월부터 4개월에 걸쳐 2543개에 달하는 금융 계좌에 대한 자금 추적을 통해 피해자 503명을 모두 특정하고 가상자산거래소와 해당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유해 이달부터 피해 회복 절차를 개시했다. 특히 이달 21일에는 국내 5대 가상자산거래소와 피해금 환급에 관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비대면으로도 신속히 피해 환급이 가능하도록 절차를 개선했다. 경찰은 22일 기준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 100명에게 40억 원을 환급했으며 남은 피해자 403명에게도 조속히 82억 원 상당의 피해금을 환급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과정에서 피싱 피해금 환급의 제도적 문제점이 확인된 만큼 이를 조속히 보완할 수 있도록 관계 당국, 가상자산거래소와 지속적으로 협의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