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집값 상승 기대감에 불 질렀나…가계대출 방화범과 숨바꼭질 [조지원의 BOK리포트]

5개월 만에 가계대줄 25兆 늘자 당국 비상
고금리에도 대출 급증은 살아난 심리 영향
가산금리 인하에 특례에 50년 주담대까지
금리 동결했는데 각종 대책 일제히 쏟아내
포모 고려하지 못한 채 정책 조율 엇박자
공급 대책 조절했는데 기대 꺾을지 관심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모습. /연합뉴스

가계대출이 올해 4월부터 8월까지 불과 5개월 만에 25조 원 넘게 증가했다. 과거 초저금리 환경에서나 볼 수 있던 대출 증가세가 기준금리가 3.50%로 10년 만에 가장 높은 현시점에 다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만 떼어놓고 보면 2021년 8월 첫 금리 인상 이전보다 빠른 속도다.


한동안 안정됐던 금융불균형 관련 지표들은 대출 증가와 함께 상승 전환했다. 한국은행이 추정한 2분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분기 101.5%에서 2분기 101.7%로 0.2%포인트 높아졌다. 중장기적인 금융불균형 정도를 보여주는 금융취약성지수(FVI)도 1분기 43.3에서 2분기 43.6으로 상승 전환했다. 상승 폭이 크진 않지만 대외여건이 불확실한 데다 고금리 국면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선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


당국과 전문가들은 가계부채가 늘어난 근본적인 원인으로 주택경기 회복을 지목하고 있다. 주택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보이자 주택 구입을 위한 자금 수요가 늘었고 이에 연동해 대출도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택경기를 되살아나게 한 요인은 무엇일까.


많은 전문가는 지난해 부동산 시장 경착륙을 우려한 정부 당국이 한꺼번에 너무 많은 대책을 쏟아낸 것이 되려 역효과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1·3 부동산 규제 정상화에 특례보금자리론을 시행하는 동시에 당국은 가산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여기에 기준금리는 동결 기조로 돌아섰고 주택 공급마저 충분치 않을 수 있다는 신호를 줬다. 이러한 공급과 수요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4월 이후 주담대를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고금리여도 최근 2~3년 부동산 급등에 대한 기억이 남아 아직도 자산 시장에 올인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결과이기도 하다. 결국 재정·통화·금융 당국의 정책 조합 실패라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연합뉴스

① 1·3 대책으로 매수 심리 움직이게 한 정부?


가계대출이 늘어나게 된 첫 번째 요인은 정부의 각종 규제 완화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1월 3일 ‘2023년 업무 보고’를 통해 주택시장 연착륙을 유도한다며 각종 규제 정상화 조치를 발표했다. 당시는 주택가격이 급락하면서 부동산 경착륙에 대한 우려가 커졌던 때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공개적으로 부동산 가격 하락을 우려했다. 향후 1년 뒤 집값 전망을 보여주는 한은의 주택가격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가 지난해 11월(61)과 12월(62)에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질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먼저 정부는 서울 강남·서초·송파·용산 등 4개 자치구를 제외한 모든 구역에 대해서 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 등 규제 지역을 해제했다. 일부 지역을 제외한 지역에 대해선 세금뿐만 아니라 대출 규제를 완화했다는 의미다. 분양가 상한가 기준 폐지, 실거주 의무 폐지, 전매제한 완화 등을 각종 규제가 완화됐다.


이에 당시 분양을 마치고 계약 중이었던 둔촌주공 등 일부 아파트에 혜택이 집중됐다는 평가가 나왔으나 결과적으로 경착륙을 막는 역할을 했다. 한은도 올해 3월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 “1월 들어 정부의 주택시장 규제 완화 조치 등으로 주택가격 하락세가 둔화되고 주택가격전망 CSI도 71로 소폭 반등했다”고 지목하면서 시장 분위기가 전환된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다만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풀면서 ‘집값 하락은 여기까지’라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 이번 사태의 시발점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② 가산금리 내리라고 창구지도한 금융당국?


두 번째로 거론되는 것이 시장 논리에 맞지 않는 당국의 창구지도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올해 초부터 주요 은행을 직접 방문하면서 대출금리 인하를 끌어냈다. 올해 3월 우리은행은 모든 가계대출 상품 금리를 최대 0.7%포인트 내렸다. 신한은행도 개인신용대출 0.5%포인트,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0.4%포인트 낮췄다. 마침 미국에서도 금리 인하 기대감이 터져 나오면서 시장 금리가 낮아진 영향이 동시에 발생했다.


그 결과가 긴축 의도보다 낮은 시장 금리로 나타났다. 기준금리가 2021년 8월 1.50%에서 2023년 8월 3.50%로 300bp(1bp는 0.01%포인트) 오르는 동안 가계의 평균 주담대 금리는 2021년 8월 2.88%에서 2023년 8월 4.83%로 195bp 상승하는 것에 그쳤다. 금리를 원칙적으로 자율에 맡겨 놓으면 시장 기능이 작동하면서 통화정책 등이 의도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데 이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면서 의도치 않은 효과를 만들어 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씨티는 지난 5월 “한은의 단기자금시장에서 자금 흡수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강력한 대출금리 인하 압력으로 효과가 희석되고 있다”며 “통화정책 전달 매커니즘이 비둘기적(통화 완화적)으로 왜곡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은 금통위에서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7월 금통위 의사록에서 한 금통위원이 “우리나라는 거시건전성 정책뿐만 아니라 공기업 적자 등 준재정정책, 창구지도 등 중앙은행이 통제할 수 없는 정책들이 통화정책 기조와 괴리를 보이면서 통화정책 커뮤니케이션 신뢰성 측면에서 불확실성이 크다”고 목소리를 냈다.




③ 소득도 안 보는 정책 모기지 낸 금융당국?


이같은 배경에서 이번 가계대출 증가 국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지목되는 것이 특례보금자리론이다. 특례보금자리론은 금리 상승 과정에서 금리변동 위험을 줄이기 위해 고정금리 대출 전환을 지원하는 안심전환대출과 적격대출을 통합해 1년 동안 한시적으로 내놓은 정책 모기지 상품이다. 소득 제한이 없는 일반형과 주택가격이 6억 원 이하인 동시에 부부 합산 소득이 1억 원을 넘지 않는 우대형으로 나눠진다.


시장에서는 올해 1월 특례보금자리론이 출시되자마자 정부가 집을 사라는 강력한 신호를 줬다고 받아들였다. 소득 조건도 없이 DSR 규제도 피할 수 있으면서 다른 대출보다 저렴한 4%대로 고정금리로 9억 원 이하의 주택을 살 수 있는 일종의 특혜 상품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당시 당국이 이를 허용한 것은 6억 원 이하로 제한할 경우 수도권과 비수도권 차별 문제가 있고, 자산이 부족하지만 소득은 많은 맞벌이 신혼부부에 대한 역차별 논란을 감안한 결정이다.


특례보금자리론 출시는 은행권 주담대 증가로 직결됐다. 특례보금자리론 등 정책 모기지가 먼저 집값을 끌어올리자 개별 주담대까지 따라붙으면서 부채가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올해 2월까지만 해도 정책 모기지는 1조 원으로 일반 개별 주담대(7000억 원)보다 많았다. 그러던 것이 6월 들어 일반 개별 주담대가 3조 7000억 원으로 정책 모기지 2조 6000억 원보다 많아졌고 8월엔 일반 개별 주담대가 4조 1000억 원, 정책 모기지 2조 7000억 원으로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한은도 6월 이후 “특례보금자리론이 지나치게 확대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라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례보금자리론이 고소득층의 주택 마련에 악용된다는 지적과 함께 DSR 규제 예외로 놔두면 안 된다는 우려가 계속됐으나 당국은 결국 목표액(39조 6000억 원)을 95% 정도를 소진한 이후에나 일반형 공급을 중단했다. 최근 금융소비자연대회의는 “특례보금자리론 공급이 사실상 서민·실수요자 지원을 빙자해 가계부채를 조장하고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고자 하는 단기적·정무적 목표를 띄고 있었다”라고 비판했다.



서울 시내 한 은행에 주담대 관련 현수막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④ 40~50대에 50년 만기 주담대 내준 은행?


뜨거워진 부동산 시장에 마지막 기름을 끼얹은 것이 50년 만기 주담대다. 앞서 언급한 특례보금자리론에는 만기 50년 상품도 포함돼 있다. 이건 만 34세 이하 또는 신혼부부로 자격요건이 제한됐다. 이를 본 시중은행도 하나둘씩 50년 만기 신규 주담대를 내놓기 시작했다. DSR 규제를 피할 수 있는 우회수단으로 주목받으면서 폭발적으로 늘었다. 대출 만기가 길어지면 매달 내는 원리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대출 한도가 확대돼 더 많은 대출을 받기 위한 우회수단으로 활용된 것이다. 50년 만기 주담대는 5월 3000억 원, 6월 8000억 원, 7월 1조 8000억 원에서 8월 5조 1000억 원으로 급격히 늘었다.


금융위에 따르면 50년 만기 대출을 받은 차주의 70%가 만 40세 이상인 중장년층 또는 고령층이다. 주담대 평균 상환 기간이 5~6년인 것을 감안하면 이를 50년 동안 이를 다 갚는 것이 아니라 집값 상승을 전제로 고가 주택을 구매해 차익을 실현할 수단으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있다. 매년 갚는 원리금 상환액은 줄더라도 총상환액은 크게 늘기 때문에 다 갚는 건 부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당국은 50년 주담대의 DSR 산정 기간을 최대 40년으로 줄이면서 우회로 차단에 나섰다.


당국은 50년 주담대가 가계대출 증가의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라고 보면서도 은행의 50년 만기 주담대 운영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초장기 대출을 내주는 과정에서 은퇴 후 소득을 면밀하게 점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은행 간 경쟁으로 인터넷전문은행도 주담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 것으로 지목됐다. 한은 금통위가 8월 의사록에서 가계대출 증가 요인으로 거론한 ‘금융기관 대출 행태 간의 상호작용’, ‘금융기관 내부 리스크 관리 관행’ 등은 이를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2023.08.24. 사진공동취재단

⑤ 금리 동결로 금리 인하 기대 만든 한은?


무엇보다 차주들이 높은 금리 수준에도 큰 규모의 대출을 받은 것은 지금 금리가 높아도 앞으로는 금리를 내릴 일만 남았다는 판단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한은 금통위는 올해 1월 기준금리를 연 3.25%에서 연 3.50%로 한 차례 인상한 이후 2월부터 5연속 금리를 동결했다. 미국 등 주요국도 금리 정점에 대한 기대가 형성된 시점이다.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조금씩 확대된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


한은 통화정책이 가계대출이나 집값 하나만 보고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금리보다 미래 금리에 대한 기대가 대출 증가세에 영향을 끼쳤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금통위는 물가나 주요국 통화정책, 가계부채 등 대내외 여건에 따라 금리를 3.75%로 올릴 가능성을 열어두긴 했으나 시장에서는 만장일치 동결을 금리를 더 올리지 않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한은이 금리를 동결한 것은 경기 둔화 가능성과 함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불안 등 금융안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사상 최대로 벌어졌어도 금리를 올리지 않고 버텼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각종 대책으로 늘어난 가계부채가 앞으로도 잡히지 않는다면 통화당국 입장에선 올리지 않아도 될 금리 인상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 이미 과도한 대출이 소비·투자를 제약해 통화정책 제약요인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부채가 더 늘어나는 걸 방치하기 어렵다.


가계대출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자 당국은 특례보금자리론 일반형과 50년 만기 주담대에 대한 대책을 마련했다. 주택 공급 대책에서도 수요 정책은 포함하지 않았다. 한은도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통해 통화정책이 금융불균형에 미치는 영향을 거론하면서 금리 인하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또 때마침 미국에서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미 국채 금리가 급증하고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금융·외환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다만 한 번 되살아난 주택 매수 심리가 꺾일 수 있을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