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광고플랫폼 ‘로톡’, 미용의료 광고플랫폼 ‘강남언니’, 세무 플랫폼 ‘삼쩜삼’ 등 각종 전문직 서비스 플랫폼이 소비자 후생에 도움이 된다는 경제학자들의 단합된 의견이 나왔다. 전문직역 단체들이 지적하는 플랫폼 독점이나 종속 문제가 나타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
한국경제학회는 이달 7일부터 25일까지 ‘플랫폼과 전문직역’을 주제로 한 경제토론 결과를 이달 25일 공개했다. 조사에서 ‘전문직 플랫폼 서비스가 다양한 정보 제공으로 정보비대칭성을 완화하고 신뢰재 문제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냐’는 질문에 71%가 ‘동의’하고, 15%가 ‘강하게 동의’했다. ‘확신없음’이 13%였으나 동의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1명도 없었다. 이 문항에서 곽노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초기에는 문제점들이 나타날 것으로 생각되나 보완하는 과정(예를 들면 과거 경험들을 축적해 평판을 만들어가는 방식 등)이 진행된다면 긍정적인 측면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전문직 직역 단체들이 주장하는 ‘전문직 플랫폼이 과당 경쟁을 발생시켜 서비스 질을 낮춰 국민에 피해가 발생할 수 있고 거대화하면 독점 문제가 발생해 전문직이 플랫폼에 종속될 수 있다’라는 질문엔 56%가 ‘동의하지 않음’, 10%가 ‘강하게 동의하지 않음’이라고 답변했다. 사실상 3명 중 2명이 그렇지 않다고 본 셈이다. 이외 ‘동의함’이 21%, ‘확신없음’이 13%였다.
전체 사회 후생과 관련해 전문직 서비스 플랫폼의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항에서는 92%가 긍정적 효과가 크다고 답변했다. 나머지 8%는 ‘확신없음’을 선택했다. 부정적 효과가 크다는 경제학자는 없었다. 이와 관련해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플랫폼의 독점은 소비자에 대한 공급서비스의 독점과 전혀 다른 이슈이다. 전문직이 플랫폼에 종속되는 것은 서비스 가격을 정상이윤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현상을 나쁘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김부열 서울대 교수는 “전문직 플랫폼의 미래 독점 가능성이 야기할 문제보다 현재 면허제도 내에서 전문직 공급제한, 전문직 서비스의 과소 경쟁이 더 큰 문제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이승훈 연세대 교수도 “시장이 커짐에 따라 다수의 플랫폼이 존재 가능하고, 서비스 공급자의 플랫폼 간 이동을 제한하는 요소를 생각하기 어렵다”며 “두 가지 조건에서 플랫폼이 독점적 지위를 누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이달 26일 법률 서비스 플랫폼 ‘로톡’에 가입한 변호사에 대한 대한변호사협회의 징계 처분을 전부 취소했다. 로톡을 이용하다가 변협에서 징계를 받은 변호사 123명이 낸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120명에 대해서는 혐의 없음, 3명에 대해서는 ‘불문경고’ 결정을 내렸다.
법무부는 이날 배포한 발표문에서 주요 쟁점에 대해 모두 로톡과 가입 변호사들의 위법 혐의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현행 변호사법은 변호사가 아닌 사람이 변호사 광고, 알선을 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다. 법무부는 “로톡은 변호사와 소비자가 ‘연결될 수 있는 장’을 제공할 뿐, 특정 변호사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서비스에 해당하지 않아 징계 대상 변호사의 혐의도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며 “법률 시장의 정보비대칭 문제를 해소하고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해 헌법상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의 실질적 보장에 기여하는 등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젊은 변호사들은 로톡의 손을 들어준 법무부의 결정을 환영하고 있다. 이번 결정으로 대형 로펌과 전관 출신 베테랑 변호사들과의 수임 경쟁 속에서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분위기다. 개업 10년차의 한 변호사는 “앞선 사례들에서 봤을 때 로톡을 규제할 명분이 충분치 않았다고 봤을 것”이라며 “플랫폼을 활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젊은 변호사들을 징계하는 조치가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법무부의 이번 판단으로 로톡은 사업 반등의 기대를 갖게 됐다. 로앤컴퍼니는 “공정과 상식에 부합하는 정의로운 결정을 내려주신 법무부 변호사징계위원회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며 “법무부 징계위 결정을 존중하며, 앞으로도 국내 대표 리걸테크 기업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올바른 서비스 운영에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맘껏 웃기는 힘든 상황이다. 변호사단체들의 압박으로 불과 2년 만에 회원 수가 절반 가까이 줄었고 가입 변호사도 반 토막이 났기 때문이다. 로앤컴퍼니는 지난해 영업손실 155억 원을 기록했다. 리걸테크 업계 역시 아직 마음을 완전히 놓기는 이르다고 보고 있다. 앞서 수차례 헌재·검찰·공정위 등 헌법 기관들이 로톡 편에 섰음에도 변호사 단체들은 자체 규정을 수정해 플랫폼 가입 변호사를 징계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온 만큼 앞으로도 다른 이유를 들어 다시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엄태섭 법무법인오킴스 파트너 변호사(리걸테크 스타트업 렉시냅틱스 부대표)는 “이번 법무부의 판단이 리걸테크 산업의 판을 키우는 발단이 됐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법률 플랫폼이 변호사 단체와 분쟁을 겪을 여지는 아직 남아 있어 양질의 변호사 회원을 모으기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근본적인 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입법부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변호사가 광고할 수 있는 매체에 ‘온라인 플랫폼’을 명시적으로 포함하는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안 등이 계류하고 있다. 엄 변호사는 “입법부가 법 자체를 고치지 않으면 앞으로도 법률 플랫폼을 둘러싼 분쟁은 발생할 것”이라며 “국내 리걸테크의 발전을 위해서는 국회가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7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는 리걸테크 활성화와 관련된 6건의 변호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 이소영·박성준·권칠승·김영배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4건의 변호사법 개정안은 변호사 광고 수단 중 하나로 온라인 플랫폼을 명문화해 리걸테크를 활성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형동·김병기 의원이 2021년 대표 발의한 나머지 2건의 법안은 리걸테크 기업을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최근 법사위 등에서 논의되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법무부의 26일 결정을 계기로 리걸테크 활성화 법안들도 국회 통과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해 6월 19일 법사위 법안제1소위에는 총 5건의 리걸테크 관련 법안이 상정됐지만 의결 절차는 진행되지 않았다. 법무부 징계위원회에서 변협 징계 관련 결론을 내지 않았다는 것이 주요 이유였다. 하지만 징계위원회가 로톡의 손을 들어준 만큼 다시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리걸테크 활성화 법안을 발의한 한 의원실 관계자는 “당장은 국정감사 등의 이유로 법안 추진이 어렵지만 법무부 결정이 난 만큼 연말이나 내년 초 즈음에는 법제화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리걸테크 활성화를 단순 플랫폼을 넘어서 법률서비스 전반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리걸테크 기업들은 로톡, 로앤굿 등 법률 서비스 플랫폼 외에도 판례 검색 서비스 ‘케이스 노트'·법률 문서 자동 작성 서비스 ‘리걸 케어’ 등이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법원이 하급심 판례를 제공하기만 하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판례 분석 등 고도화된 리걸테크 서비스가 가능한 상황이다.
엄 변호사는 “리걸 테크를 활성화하려면 국회가 규제를 풀고 법원은 판례를 공개하는 등 입법·사법부가 동시에 나서야 한다”며 “지금 여건을 마련하지 않으면 AI 고도화에 따른 리걸 테크 발전이라는 세계적 흐름에 뒤쳐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