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 예산안을 처리하며 가까스로 연방정부 업무 정지(셧다운) 위기를 모면한 미국 정치권이 예산안에서 누락된 우크라이나 지원 항목을 두고 다시 대립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관련 예산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나선 반면, 민주당의 도움을 받아 예산안의 하원 통과를 주도해 공화당 강경파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는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은 “우크라이나보다 미국 국경이 우선순위”라고 선을 그었다.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미국 국경 지원과 연계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라 향후 논의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어떤 상황에서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중단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며 “반대편에 있는 내 친구들(공화당)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약속을 지키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상·하원에는 압도적으로 많은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가 침략에 맞서 스스로 방어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확보하겠다는 약속을 하원의장이 지킬 것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미국 의회는 전날 밤 셧다운을 3시간가량 앞두고 45일짜리 임시 예산안을 처리했다. 이 예산안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요청한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240억 달러)이 포함되지 않았다. 하원에 앞서 처리된 상원 임시예산안에는 60억 달러가 포함됐으나 셧다운 위기가 가시화하자 매카시 하원의장은 공화당 강경파가 반대해 온 우크라이나 지원과 민주당이 반대하는 국경 강화 등을 제외한 예산안을 제안해 최종 통과시켰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지원예산의 시급성에 대한 질문에 “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다”며 “압도적으로 긴박한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며 관련 예산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재확인했다.
셧다운 위기에 대해서도 “애초 이 상황까지 와선 안 됐다”며 공화당을 정조준했다. 연방정부의 업무 정지 직전까지 상황이 악화한 것을 ‘만들어진 위기’라고 규정한 바이든 대통령은 “벼랑 끝 전술이 지겹고 지쳤다”며 “(정치적) 게임을 그만하고 이제 이 일을 처리해야 한다. 또 다른 위기가 있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시 예산안을 제안해 통과시킨 매카시 의장도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매카시 의장은 이날 CBS 인터뷰에서 “내 우선순위는 미국과 미국의 국경”이라며 “우크라이나가 필요한 무기를 확보할 수 있도록 확실히 하는 것을 지지하지만, 나는 (미국) 국경을 우선하는 것을 굳게 지지한다”고 말했다. 또 “미국 국경도 중요하며 우크라이나에서 죽는 미국인보다 미국 국경에서 죽는 미국인이 더 많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지원과 국경 강화 예산을 연계한다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무기가 우크라이나에 지원되도록 확실하게 하겠지만, 만약 (미국) 국경이 안전하지 않다면 우크라이나는 큰 (지원) 패키지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우크라이나 지원 항목 누락을 두고는 유럽연합(EU)도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AP통신에 따르면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 대표는 이날 키이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면담한 뒤 “이것(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누락)이 최종 결정이 되지 않고 우크라이나가 계속 미국의 지원을 받게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