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돈으로 돌려막기…공시만 떠도 주가 뚝

■ 빚 갚기용 유상증자, 3배 급증
고금리 장기화에 이자부담 눈덩이
주주에 손벌린 불황형 유증 속출
재무악화 시그널에 투자자 눈물

CGV 신세계경기지점 전경. 연합뉴스

상장사들이 올해 들어 채무 상환용 유상증자 규모를 크게 늘린 것은 고금리 국면이 예상 외로 길어지면서 기존 대출의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근에는 재무구조가 취약한 바이오 기업, 저비용항공사(LCC)뿐만 아니라 유동성 위기에 몰린 대기업 계열사들까지 전방위적으로 유상증자에 뛰어드는 분위기다. 더욱이 올해는 글로벌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유상증자 결정 자체가 시장에 재무 악화의 신호처럼 인식돼 개인들의 투자 손실로 직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3일 서울경제신문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358곳이 올 1월부터 9월 30일까지 공시한 전체 유상증자 금액 28조 5228억 원 가운데 70.83%인 20조 2052억 원이 주주배정 유상증자였다. 유상증자는 기존 주주에 신주를 발행해 자금을 모으는 주주배정 방식과 임원·거래처 등 회사의 특정 연고자에 신주를 부여하는 제3자 배정 방식으로 나뉜다. 제3자 배정 방식의 경우 경영권 구도 등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어 일반적으로 기업 입장에서는 주주배정 방식 유상증자가 자금 조달에 가장 간편한 방법으로 통한다.


투자 전문가들은 최근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자 상장사들이 당장 이자 부담이라도 줄여야 한다고 판단하면서 주주배정 유상증자가 최근 급격히 늘어났다고 진단했다. 고금리 장기화로 회사채 발행 및 은행 대출이 여의치 않자 결국 유상증자로 자금 돌려 막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실제로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기조가 재부각하자 3년 만기 AA- 등급 기준 회사채 금리는 3월 24일 연 3.928%에서 9월 26일 연 4.654%까지 올랐다. 지난달 30일 국고채 3년물 금리는 3.875%, 10년물 금리는 4.012%를 기록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9월 20일(현지 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마친 뒤 워싱턴DC 연방준비은행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고금리 시기 빚을 갚기 위한 ‘불황형 유상증자’가 속출하면서 개인투자자들까지 주가 급락의 유탄을 맞고 있다는 점이다. 유상증자 결정은 신사업 추진 등 기업의 중장기 성장에 보탬이 될 만한 뚜렷한 목적이 없을 경우 주식시장에서 대체로 악재로 분류한다. 추가로 투자를 받는 만큼 발행 주식 수가 늘어나면서 주식 가치가 희석되는 탓이다. 특히 올해는 기업이 부채 상환이나 운영자금에 사용하기 위한 유상증자 결정을 공시하기만 해도 그 자체가 재무 사정 악화로 인식돼 주가가 추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CJ CGV(079160)의 경우 올 6월 20일 채무 상환 목적으로 4153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을 공시한 직후부터 9월 27일까지 42.31%나 급락했다. 에스디바이오센서(137310)도 채무 상환 목적으로 2582억 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밝힌 6월 13일부터 같은 날까지 주가가 27.39% 떨어졌다. 이 외에 대유에이텍(002880)(-42.35%)과 미래산업(025560)(-35.81%), 효성화학(298000)(-11.03%), 코스맥스(192820)(-11.49%) 등도 이달 유상증자 결정 공시를 낸 날부터 지난달 27일까지 주가가 큰 폭으로 내렸다.


심각한 자금난에 처한 바이오 기업들과 LCC들은 채무 상환 목적이 아닌 유상증자 소식으로도 주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코스닥시장 상장사인 항암 신약 개발 바이오 벤처기업 메드팩토(235980)는 1159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공시한 다음날인 지난달 13일 주가가 하루 만에 27.76% 급락했다. 또 다른 바이오주 라이프시맨틱스(347700)도 200억 원 규모로 유상증자를 하기로 결정했다는 공시를 낸 다음날인 같은 달 12일 곧바로 하한가를 맞았다. 제주항공(089590)은 25일 최대주주인 에이케이홀딩스와 애경자산관리를 대상으로 총 404억 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추진한다고 밝힌 뒤 27일까지 1.42% 하락했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상증자는 대개 지분 희석을 동반하므로 주주배정이든 제3자 배정이든 기존 주주에는 부담 요소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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