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달러 환율이 1년 만에 150엔 선을 돌파했다. 일본 금융 당국이 이미 여러 차례 구두 개입에 나섰지만 엔저 현상은 오히려 심화하고 있다. 주요국 중 유일하게 금융 완화적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과 긴축 고삐를 죄고 있는 미국 간 금리 격차가 엔화 가치 하락을 계속해서 부추기는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엔·달러 환율이 160엔 선도 넘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일본 정부가 조만간 시장 개입에 나설지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3일 미국 경제 전문 매체 CNBC에 따르면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장중 150.16엔으로 연중 최고치(가치 최저)를 기록했다. 엔·달러 환율이 150엔 선을 돌파한 것은 지난해 10월 20일(장중 150.16엔) 이후 처음이다. 올해 들어 약세를 지속하고 있는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지난달 일본중앙은행(BOJ)이 대규모 통화 완화 정책을 유지하기로 결정한 후 연일 연중 최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일본 10년물 국채 금리는 연일 상승하며 10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날 10년물 국채 금리는 개장 직후 0.786%까지 올랐는데 이는 2013년 9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인사들의 잇따른 매파적 발언에 달러화 가치가 가파르게 오르며 엔·달러 환율 상승세에 불을 붙이고 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이날 장중 107.35까지 뛰며 지난해 11월 22일(107.75)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격차는 엔화 약세를 부추기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연준은 지난해부터 인플레이션에 대응한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을 지속하며 금리 상단을 0.25%에서 현재 5.5%까지 올렸다. 연준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언제든 필요한 상황이 오면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BOJ는 물가 상승률 목표치인 2%를 안정적으로 달성하기 전까지 마이너스 금리 정책 등 대규모 금융 완화 기조를 지속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엔·달러 환율이 160엔 선에 도달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미스터엔’으로 불리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일본 재무성 차관은 최근 블룸버그TV와 인터뷰에서 엔화 가치가 내년 160엔을 넘어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엔저 현상이 심화되자 일본 정부가 여러 차례 구두 개입에 나섰지만 엔·달러 환율의 상승세에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은 이날 “계속해서 높은 긴장감을 갖고 만전의 대응을 취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정부의 시장 개입 가능성과 관련해 “외환 시세의 변동 폭을 고려해 판단을 내리겠다”고 덧붙였다. 슌이치 재무상은 지난달 말에도 “외환시장 동향을 높은 긴장감을 갖고 보고 있다”며 “과도한 변동에 대해서는 모든 선택지를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시장은 일본 금융당국이 외환시장 개입에 나설지 주목하고 있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해 9월 엔화 가치가 달러당 145.89엔을 기록하며 24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자 엔화 매수·달러화 매도 방식으로 시장에 직접 개입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