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은메달 선수' 포옹 사진 지운 중국…‘6·4 알레르기’ 도졌나 [항저우AG]

지난 1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육상 100m 허들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딴 중국 린위웨이가 동료 우옌니를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관영매체가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각각 1·2위를 차지한 자국 선수들이 포옹하는 사진을 삭제했다. 그 원인으로 톈안먼(천안문) 사태를 연상케 하는 ‘6·4 알레르기’가 지목돼 검열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4일(한국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 1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육상 100m 허들 결승전 직후 트랙 위에서 금메달을 딴 중국 린위웨이가 은메달리스트인 자국 동료 우옌니를 포옹했다.


두 선수가 달린 트랙 번호는 공교롭게도 각각 6번과 4번이었다. 이에 두 선수는 골반 쪽에 이 같은 숫자가 적힌 스티커를 붙힌 채 뛰었고 포옹하고 있는 사진에도 숫자 6과 4가 나란히 담길 수밖에 없었다.


금메달과 은메달을 나란히 획득한 후 두 선수가 포옹하는 모습은 중국 관영 매체인 중국중앙TV(CCTV)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위챗 계정에도 게재됐다. 그러나 이 사진은 이후 돌연 삭제됐다. 현재 CCTV 웨이보에서는 해당 사진도 삭제된 상태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육상 100m 허들 경기 중 찍힌 선수들. 예선전에선 1989년을 연상시키는 숫자 8과 9, 결승전에서는 6월4일을 떠올리게 하는 숫자 6과 4가 찍힌 모습이 담겼다. X(옛 트위터) 캡처, 연합뉴스

중국 내에서는 노이로제에 가까울 정도로 매우 엄격하게 천안문 사태에 대한 여론을 통제한다. 숫자 ‘6’과 ‘4’는 1989년 6월 4일 중국 당국이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유혈 진압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중국에서는 검열 대상 중 하나로 꼽힌다.


홍콩이나 대만 등에서는 매년 6월 4일이 되면 천안문에서 시위하다 숨진 이들을 추모하고자 6월4일 오후 6시4분에 촛불을 드는 식으로 기린다. 그러나 중국 본토에서는 언급조차 금지돼 있다.


매체는 “중국 당국이 천안문 사건 사진을 검열한 것으로 보인다”며 “6/4라는 표현은 34년전 6월 4일 발생한 천안문 사태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관련 표현은 중국 당국에 의해 빈번히 검열되고 삭제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일은 BBC와 CNN 등 주요 외신들도 주목했다. BBC는 “천안문 사건에 대한 논의는 중국에서 여전히 금기시되고 있으며 당국은 인터넷에서 해당 주제에 대한 언급을 정기적으로 삭제하고 있다”며 “6번과 4번 스티커를 붙인 채 포옹하는 선수들 이미지가 검열됐다”고 전했다.


CNN은 “두 선수의 트랙 번호가 1989년 천안문 사태를 우연히 연상시켰기 때문에 사진을 검열한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 국경일인 10월 1일 이 같은 장면이 포착됐는데 이날은 당국이 축하 행사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징후에 더욱 경계하는 민감한 시기”라고 꼬집었다.


한편 해당 경기에서 은메달을 딴 우옌니는 이후 부정 출발로 실격 처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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