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한 살씩 더 늘어가면 가끔 생각나는 시가 있다.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다.
이 시를 대할 때마다 마음속에 긍정의 에너지가 솟는다. 그렇지. 진정한 청춘이란 ‘장미의 용모,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손발’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요, ‘풍부한 상상력’이며, ‘불타오르는 정열’인 것이다. 그렇게 공감해 본다. 우린 모두 영원히 젊고 싶다. 푸르른 소나무처럼 싱싱하고 싶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노년이 되어도 변함없이 그런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비법은 있는 걸까.
현대 마케팅 기술은 형체가 없는 대상에도 인격을 부여하는 기법을 선보였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브랜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대상에 이름을 붙이고, 성격을 부여하고, 느낌을 불어 넣는다. 현대인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인격에 친화력을 느끼고, 자신의 실제 정체성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그 ‘인격’이 요즘의 마케팅 언어로 말하자면 ‘페르소나(persona)’다. 라틴어의 ‘가면’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타인에게 파악되는 자신의 모습이라고 이해하면 쉬울 듯하다.
디지털 시대에서 페르소나는 더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소셜미디어 같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우리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정체성을 매 순간 드러내고, 타인의 정체성 또한 쉼 없이 마주하고 있다. 그 정체성이 바로 디지털 페르소나다. 이 페르소나를 통해 우리는 타인에게 다가가고, 호감을 얻고, 그렇게 함으로써 디지털 세상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
디지털 문화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 영역에서도 페르소나의 힘은 크다. 소셜미디어 계정을 성공적으로 육성하는 첫 번째 비결도 먼저 나만의 개성이 묻어나는 페르소나를 세우고, 타인의 페르소나를 잘 파악하는 것이다.
인스타그램 계정의 성공적인 운영 방법을 다룬 책 ‘시크릿 인스타그램’의 조은 저자는 “인스타그래머(Instagrammer·인스타그램 사용자)가 되기로 결심했다면 가장 먼저 내 인스타그램 계정의 디지털 페르소나를 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스타그램 같은 소설미디어 계정에 무작정 피드를 올리기보다는 페르소나를 정한 뒤 피드의 결을 같은 방향으로 유지하는 것이 보다 빨리 계정을 키워나가는 비결이라는 조언이다.
디지털 세상이 되면서 온라인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기회가 많아졌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나 1인 미디어, 모바일 메신저 같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계정을 만들고, 나의 디지털 페르소나를 드러내는 일이 이젠 일상이 됐다.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는 시니어는 디지털로 구현되는 바로 이 디지털 정체성을 주목해야 한다. 디지털 영역에서 나를 표현하는 수단, 어쩌면 나이가 들어도 늙지 않을 수 있는 디지털 정체성, 바로 디지털 페르소나다. 생물학적인 나는 쇠락해 가도 나의 디지털 페르소나는 노화하지 않을 수 있다. 이 디지털 페르소나를 잘 가꿈으로써 시니어는 누구나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열”을 지닌 ‘늙지 않는 나’, 노년이 되어도 활력이 넘치고 매력적인 나를 재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영역에서 표현되고 있는 나의 디지털 페르소나는 어떻게 점검해 볼 수 있을까. 필자가 오랫동안 소셜미디어 계정을 운영하면서 느낀 점을 다음과 같이 7가지 체크리스트로 요약해 봤다.
1. 당신의 프로필 이미지는 충분히 트렌디한가.
2. 당신의 대화는 간결하고 진정성이 배어있는가.
3. 당신의 말투에는 디지털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는가.
4. 당신의 말에 소수나 약자에 대한 차별적 언어 없는가.
5. 당신의 생각은 참신하고 호기심이 넘치는가.
6. 당신의 콘텐츠는 유머와 재치, 감성이 담겨 있는가.
7. 당신은 이모티콘 같은 디지털 소통 도구의 활용에 익숙한가.
디지털 소통의 시대다. 모바일 메신저에서부터 다양한 SNS 플랫폼과 1인 미디어, 그리고 이메일과 스마트폰의 다양한 앱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디지털 플랫폼 속에서 소통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디지털 플랫폼에서 비춰지고 있는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나를 표상하고 있는 프로필 사진 한 장, 그리고 온라인상에서 뿌려지는 나의 말투와 화법은 디지털 타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인지, 나의 언어에 차별과 편견의 파편이 섞여 있지는 않은지, 위압적이거나 공손하지 못한 태도는 없는지, 나만의 독특한 개성은 잘 드러나고 있는지, 상대를 향한 배려는 충분한지, 그래서 과연 나의 총체적인 디지털 페르소나는 안녕한지, 곰곰이 따져 볼 일이다.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디지털 영역에서 자신의 페르소나를 쉼 없이 드러내고 있다. 비대면 세계의 디지털 페르소나는 어쩌면 대면 세계의 생물학적 페르소나보다 훨씬 더 자주, 더 많은 시간 타인에게 소비되는 더 중요한 페르소나일 것이다. 그럼에도 무감각할 때가 많다.
시니어에게 디지털 페르소나를 가꾼다는 것은 단순히 디지털 소통을 잘하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앞서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처럼 세월이 흐르고 그래서 “장미의 용모,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손발”은 사라져 가더라도,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는 언제든 ‘디지털 청춘’을 재현해 낼 수 있다. 그것은 곧 새로운 디지털 인생을 의미하며, 삶과 일에 대한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시니어들이여, 지금 한번 살펴보라. 디지털 세상에서 나의 페르소나는 지금 어떤 모습인가. 그리고 자문해 보라. ‘당신의 디지털 페르소나는 안녕하십니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