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판빙빙과 이주영의 압도적인 연기가 담긴 영화 '녹야'가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왔다.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에 위치한 KNN 타워에서 '녹야'(감독 한슈아이)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사회를 맡은 남동철 집행위원장 직무 대행과 연출을 맡은 한슈아이 감독과 주연 배우 판빙빙, 이주영이 참석한 가운데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녹야'(감독 한슈아이)는 인천 여객항 보안 검색대에서 일하는 진샤(판빙빙)가 우연한 계기로 초록색 머리를 한 여성을 만나게 되며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연출을 맡은 한슈아이 감독은 작품 연출 계기에 대해 "감성적으로 어떤 영화를 구상하게 되는데 두 명의 여자가 밤에 달리는 모습의 영상을 떠올렸다"고 밝혔다.
진샤 역을 연기한 판빙빙은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소감을 밝혔다. 그는 "초대받게 돼서 기쁘게 생각한다. '녹야'를 선택해줘서 감사하다. 7, 8년 전에 부산국제영화제를 오게 됐는데 시간 지나 방문하게 돼서 기쁘다"며 내한 소감을 밝혔다. 이어 출연 계기에 대해 "녹색 머리의 여자를 보고 녹색에 이끌리게 되고 감정의 변화에 휘말리는 스토리가 매력적이었다. 여성이 여성을 구제하는 영화였다. 내가 그간 겪은 스토리와 매치가 됐고 그것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좋은 영화와 스토리는 늘 매력적이다"고 전했다.
판빙빙은 '녹야'에 담긴 여성의 힘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영화 제작팀이 거의 여성으로 이뤄졌다. 여성만이 여성을 진정으로 돕고 이해하고 잘 알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코로나가 가장 심각하던 시기에 영화를 찍었다. 서울에서 찍었는데 외로운 섬에 버려진 느낌이었다. 굉장히 어려움이 많았지만 여성들의 힘으로 극복해서 만든 영화다"라고 말했다.
판빙빙은 오랜 공백을 깨고 '녹야'로 복귀했다. 사실과는 동떨어진 뉴스들이 넘쳐나던 시기를 넘어 '녹야'로 성공적인 컴백을 이뤄낸 그는 "연기자는 자신을 침착하게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몇년 정도는 휴식이 필요하다. 새로운 스토리나 새로운 사람을 만날 필요도 있다. 삶의 기복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며 삶의 콘텐츠를 더 쌓아갈 수 있는 시간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판빙빙은 함께 호흡을 맞춘 이주영에 대해 언급했다. 이주영을 섭외하기 위해 손편지까지 썼던 판빙빙은 "이주영 말고는 함께하고 싶은 배우가 없다"고 말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 "연애편지를 쓰는 느낌이었다. 너무 달콤하게 쓰면 오히려 진정성이 없어서 의심을 받을 것 같았다"며 손편지 일화에 대한 농담 섞인 설명을 덧붙였다.
초록머리 여자 역을 맡은 이주영은 촬영 과정을 밝혔다. 그는 제목을 언급하며 "초록색이라는 것은 중요한 상징이다. 외형적인 변화로 캐릭터를 구축해나가기 위해서 감독님과 많이 이야기를 했다. 기질적으로 다른 인생을 살아왔고 성별, 나이, 국적을 떠나서 서로 너무 다르지만 끌리게 되는 포인트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작품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이주영 또한 호흡을 함께 맞춘 판빙빙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판빙빙을 "언니"라고 칭하는 그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눈과 마음으로 통하는 것이 느껴져서 마음이 열리고 가까워졌다. 초반부에 초록머리 여자라는 캐릭터를 만들 때는 감독님이 많이 도와주셨다면 현장에서는 판빙빙 언니가 보내주는 눈빛이나 분위기 같은 것들이 연기하는 데 무리가 없도록 만들어줬다"고 회상했다.
더불어 이주영은 손편지를 받은 일화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출연을 고민하던 차에 있었던 일화에 대해 "빙빙 언니에게 손편지를 받았다. 따뜻한 순간에 마음이 동했다. 이 두 분과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하며 당시의 훈훈한 분위기를 떠올렸다.
'녹야'는 퀴어물로 가정폭력, 성범죄, 동성애 등 파격적인 소재로 일찍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하지만 '녹야'는 소재의 자극성보다도 배우의 내면 연기가 빚어낸 명장면들이 빛나는 작품이다. 진샤가 껌을 한꺼번에 먹는 신, 두 여성이 따귀를 주고 받는 신은 그중에서도 명장면이다. 두 배우는 이러한 신들을 연기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에 대해 밝혔다.
이주영은 "감정적으로 깊게 들어가야 하는 신, 따귀 때리는 신 같은 경우는 언니의 뺨을 때리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누군가를 많이 좋아하고 사랑할 때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들을 생각하면서 감정선을 쌓아올렸다"고 설명했다.
판빙빙은 "껌을 먹다 숨이 막히는 신은 시나리오 보고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고민했다. 지금 다시 그 장면을 연기하라고 하면 그때랑 똑같이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느낌대로 감정을 표현했을 뿐이다. 그것이 맞는 것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느낀대로 갔다"고 전했다.
더불어 작품 곳곳에는 한슈아이 감독이 암시하고자 한 영화의 메시지들이 은유적으로 담긴 신들이 넘쳐난다. 특히 수화를 하는 신에 대해 언급한 한슈아이 감독은 "수화는 시나리오 마지막 단계에 가서 추가를 한 부분이다. 집중할 수도 있고, 답답할 수도 있고, 호기심이 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남성들은 사회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살고 있으면서 두 여성들을 뒤에서 침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실제로 보이지 않는, 그런 것들이 주는 고통, 공포들이 수화를 통해서 표현될 수 있었다고 생각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녹야'가 상영되는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는 13일까지 다양한 행사들과 볼거리들을 통해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