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5일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에 비해 3.7% 올랐다. 특히 체감물가에 가까운 생활물가지수는 4.4%나 뛰었다. 당초 정부는 올 7월까지만 해도 물가 안정을 자신했다. 지난해 5~6%대를 기록했던 물가 상승률이 올 들어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며 7월에는 2%대 초반까지 내려왔기 때문이다.
다만 올여름 폭우와 폭염이 잇따르며 스텝이 꼬였다. 이상기후로 채소·과일 등 일부 농산물 생산이 급감하며 물가를 자극한 탓이다. 특히 신선 과실은 1년 전보다 24.4% 오르며 2020년 10월(25.6%) 이후 3년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구체적으로 사과(54.8%), 복숭아(40.4%), 토마토(30.0%) 등이 모두 큰 폭으로 올랐다. 농산물 전체를 놓고 봐도 물가 상승률은 7.2%에 달한다. 최근 1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국제유가는 최근 배럴당 90달러대로 치솟으며 국내 석유류 물가를 끌어올렸다. 이에 공업 제품 물가 역시 1년 전보다 3.4% 올랐다. 지난달 물가 상승률(3.7%)이 반년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갈아치운 이유다. 김보경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국제유가 상승으로 석유류 하락 폭이 둔화하며 공업 제품 상승 폭도 커졌다”고 설명했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는 1년 전보다 3.8% 상승했다. 전체 물가 상승률(3.7%)보다 0.1%포인트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방식의 근원물가 지표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는 3.3% 올라 올 7월부터 3개월째 보합세를 이어갔다.
문제는 향후 전망이다. 산유국의 움직임을 주도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전날 하루 100만 배럴의 감산 조치를 올해 말까지 연장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러시아 역시 감산 조치를 지속하겠다고 했다. 국제유가가 올 하반기 내내 고공 행진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한풀 꺾이는 듯했던 물가가 고유가 여파로 다시 치솟으면 하반기 경기 전망의 최대 변수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경기 침체로 혹여 석유 수요가 줄어도 산유국의 감산에 유가가 안정화되기 쉽지 않은 구조다.
공공요금·생활물가도 다시 튈 여지가 있다. 김동철 신임 한국전력 사장이 최근 인상 필요성을 강조한 전기료가 대표적이다. 전기료는 지난달에만 20.3% 올랐다. 도시가스와 지역난방비는 각각 21.5%, 23.4%의 상승세를 보였다. 9월 각각 20%, 8%가량 오른 택시료와 시내버스료 역시 불안하다.
정부도 비상이 걸렸다. 10월에는 물가 상승률이 3% 초반까지 내릴 것으로 보면서도 긴장의 고삐를 바짝 죄겠다는 각오다. 우선 이달 말 종료 예정인 유류세 인하 조치를 연장하는 방안에 무게를 두고 있다. 현행 유류세 인하 조치는 2021년 11월 시행돼 다섯 차례 연장됐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국제유가 강세가 수그러들지 않으면 (유류세 인하 조치를) 2개월 정도 연장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전기요금의 경우 국제 에너지 가격, 한전 등 에너지 공기업의 재무구조, 국민 부담 등 3개 축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며 “구체적 방침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민생 부담은 정책 고려 사항”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