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日 그린벨트 풀어 반도체 공장, 韓 “규제 해소” 공수표 반복

일본 정부가 55년 만에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규제를 풀어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 공장을 짓기로 했다. 미중 패권 전쟁을 틈타 핵심 전략물자의 생산 기지로 거듭나기 위해 수조 원의 보조금을 뿌리고 세금 우대 정책을 펴온 데 이어 이번에는 농지나 삼림까지 기업에 제공하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세계 최대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대만 TSMC 등이 공장 부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자 이처럼 파격적인 지원책을 내놓았다고 한다. 이는 그린벨트 지역에 속한 기아 오토랜드 광명 공장이 전기차 전용 공장으로 전환하면서 해묵은 규제에 묶여 110억 원의 ‘개발제한구역 보전 분담금’을 내게 된 것과 대비된다. 첨단산업 공장을 짓는 데도 겹규제를 받으니 일선 기업들이 현 정부의 규제 혁신 의지와 실행력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5일 입지·환경·노동·신산업·진입 등 5개 분야의 킬러 규제 혁신 입법 과제 97건을 21대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처리해달라고 요청했다. 주요 대형 마트의 영업 휴무일 온라인 배송이나 외국인 장기 근속 및 무인 배송 허용 등은 기업 투자 활성화와 신산업 육성 차원에서 일찍이 처리됐어야 마땅한 법안들이다. 하지만 대부분 발의된 지 2~3년이 지났는데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대한상의가 첨단산업 분야에서 4년 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규제 사항 중 올해 4월까지 개선된 비율은 9.3%에 그쳤다.


역대 정부는 임기 초반 ‘전봇대 뽑기’ ‘손톱 밑 가시 제거’ 등을 외치며 규제 개혁을 약속했지만 공수표에 그치기를 반복했다. 규제를 하나 없애면 새로운 규제를 만들기도 했다. 공무원들의 보신주의와 국회의 발목 잡기 탓도 있지만 정부 역시 규제 완화에 따른 이해관계자 간 갈등 조정을 회피하거나 미루기 때문이다. 첨단산업 육성과 저성장 탈출의 해법은 규제 사슬 혁파를 통한 기업 투자 활성화밖에 없다. 정부는 말로만 기업 지원을 외치지 말고 불굴의 뚝심과 속도감 있는 실행으로 민간의 혁신을 가로막는 킬러 규제들을 걷어내야 한다. 국회는 이미 계류 중인 규제 혁신 법안이라도 서둘러 처리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투자 활성화를 유도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미래 세대에 희망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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