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銀, AI 도입해 내부통제 강화해야



“내부 통제를 시스템적으로 체계화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 개발에 적극 투자하겠습니다.”


양종희 KB금융지주 차기 회장 내정자는 지난달 11일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내부 통제를 회사 차원의 감시와 직원 개개인의 양심에만 맡기지 않고 고도화된 시스템을 통해 금융 사고 발생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의미다.


최근 은행 내부 통제 그물망은 헐겁다 못해 끊어졌다. 신용이 생명인 은행에서 무려 3000억 원을 횡령한 사건이 적발됐다. 13년간 한 직원이 77차례에 걸쳐 횡령을 했는데도 아무도 몰랐다. 다른 시중은행에서는 직원들이 상장사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120억 원이 넘는 돈을 챙겼다. 고양이에게 생선 맡겨놓은 격이다.


이들이 영화에서 볼법한 기이한 수법을 동원한 것도 아니다. 가족 명의 계좌로 자금을 임의 이체하거나 대출 서류를 위조하는 ‘전형적인’ 방법을 썼다. 금융 당국이 장기 근무자 비율 제한, 순환근무제, 명령휴가제 등의 ‘내부 통제 혁신 방안’을 내놓았지만 현장에서는 달라진 게 없었다.


좋은 물건을 보면 갖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런 인간의 본성에 금융 선진국이라 자신하는 한국의 금융기관들은 ‘연전연패’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이를 뒤집기 위해서는 사람의 양심이 아닌 냉정한 첨단 기술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들어 더욱 힘을 얻고 있는 듯하다.


이미 미국에서는 골드만삭스가 먼저 나섰다. 내부자의 도덕적 해이로 골드만삭스가 역사상 가장 큰 벌금(약 8조 원)을 2020년 부과받자 이듬해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자금세탁방지(AML) 기술을 만드는 영국 기업 컴플라이어드밴티지에 2000만 달러(약 260억 원)를 투자했다. 사람이 보지 못하는 구석진 곳, 가려진 곳의 흠을 AI 기술로 잡아내겠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우리은행이 이달 초 AI 기술을 일상 감사 업무에 적용했다. 업권은 지금의 ‘전형적인’ 횡령 범죄 패턴을 감지하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물론 기술에 모든 것을 맡기자는 말은 아니다. 본능에 이끌려 생선을 탐할 수도 있는 고양이를 지켜볼 감시자를 두자는 의미다. 논어에는 ‘잘못 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이 잘못’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사람에게 맡겨 잘못이 반복된다면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잘못을 고쳐나가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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