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써보니 재밌네’, 이 한마디에 의욕이 단번에 꺾였습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예산 편성 업무를 맡았던 기획재정부 직원이 최근 이같이 털어놓았다. 그가 회고한 것은 문재인 정부 초기 예산안 중간 보고를 위해 청와대를 찾았을 때다. 그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에게 한바탕 혼이 났다고 한다. 특정 예산을 대폭 늘리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통상 각 부처가 제출한 예산을 면밀히 검증한 후 필요한 경우 과감히 삭감하는 게 예산 당국의 역할임을 감안하면 당혹스러웠다고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해당 고위 관계자는 기재부 직원들이 자리를 나서자 “돈 써보니 재밌네”라고 했다. 기재부 직원들이 모두 나갔다고 생각해 무심코 뱉은 말이었다. 기재부의 한 직원은 우연히 이 말을 들었다. 그는 그날 나랏돈을 대하는 문재인 정부의 태도를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안타까운 것은 그의 평가가 틀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갚아야 하는 빚은 확장 재정을 추구한 문재인 정부에서 400조 원 넘게 늘었다. 이에 나랏빚은 지난해 처음 1000조 원을 넘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 30%대에 머물렀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단숨에 40%대로 치솟았다. 문재인 정부 집권 당시 팬데믹으로 적극적인 경기 대응이 필요했다는 점을 고려해도 가파른 속도다.
결국 국민 1인당 국가채무는 올해 말 2200만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10년 전(971만 원)보다 2배 이상 뛰었다. 갓 태어난 신생아도 나랏빚만 2000만 원 넘게 짊어진 것이다. 심지어 5년 후면 이 액수가 3000만 원에 육박한다.
이쯤 되면 자신을 ‘추경불호(追更不好)’로 소개하는 재정 당국 수장의 의지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 초부터 “추경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추 부총리의 ‘추경불호’는 빚을 내서 추경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추 부총리는 현금성 재정 지출에 대해서도 “무책임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국회는 다음 달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심의에 돌입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대규모 구조 조정을 단행한 정부 예산안은 심의 과정에서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단 여당과 야당 모두 선심성 예산은 미래 세대 부담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책임은 결국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