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대한 ‘피의 보복’을 예고하며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진입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맞서 하마스는 인질 살해 위협을 가하며 사실상 ‘인간 방패’ 전략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이란과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까지 참전할 경우 중동 전쟁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으나 지상군 파병에는 선을 그었다.
9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와 악시오스 등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8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우리는 (가자지구에) 진입해야 한다”며 “지금은 협상할 수 없다. 이스라엘이 억지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은 7일 하마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후 수십 년 만에 최대 규모인 30만 명의 예비군을 동원했는데 이는 가자지구 투입을 위한 사전 작업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8~9일 가자지구 내 500곳 이상을 폭격하고 가자지구 주변을 완전히 봉쇄했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가자지구는 전기도, 식량도, 연료도 끊길 것”이라며 “우리는 인간 동물들과 싸우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이스라엘은 하마스 지휘부에 대한 암살 작전에 돌입했다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이스라엘 당국자를 인용해 이날 보도했다. 이 당국자는 “서방이 이슬람국가(IS)를 대할 때 했던 것처럼 하마스를 겨냥해 모든 방면에서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10일 이스라엘 공습에 가자 지구 내 하마스 고위직 2명이 사망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하마스 섬멸에 이어 중동 질서를 바꾸겠다고 천명한 가운데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 진입할 경우 대규모 인명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번 사태로 이스라엘에서 900명 이상, 팔레스타인에서도 680명가량이 숨진 것으로 파악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사망자 중에 최소 11명의 미국 시민이 있었다”며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이 포위망을 좁혀오자 하마스는 인질을 차례차례 살해하겠다고 협박하고 나섰다. 이스라엘 당국에 따르면 하마스에 붙잡힌 인질의 숫자는 150명으로 추산되며 여기에는 미국·영국·프랑스·독일·우크라이나 등 외국 국적자들도 포함돼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인질의 숫자가 너무 많고 하마스가 인질을 인간 방패로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네타냐후와 참모들이 수많은 사상자가 불가피한 지상군 진입을 시작할지 여부를 포함해 다음 단계의 군사적 옵션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이란과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 정파 헤즈볼라의 움직임은 이번 전쟁의 최대 변수로 부각되고 있다. 앞서 WSJ는 이란이 하마스와 올 8월부터 이스라엘 공격을 계획했으며 이를 논의하는 회의에 헤즈볼라가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하마스보다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에서 전면적 공격을 감행할 경우 전쟁의 양상은 크게 달라진다.
악시오스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도 네타냐후 총리와의 통화에서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을 따라 ‘제2의 전선’이 형성되는 시나리오에 대해 질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네타냐후 총리는 헤즈볼라가 포진한 레바논 국경에 대한 우려를 표하면서도 가자지구에 강력히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미국은 항공모함 제럴드포드함과 전함 5척을 동지중해로 옮기고 전투기 전력을 증강하는 등 역내에서의 확전을 방지하기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앞서 헤즈볼라를 향해 “(분쟁에 가담하기 전에) 두 번 생각하라”고 엄중히 경고하기도 했다.
미국과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 5개국 정상은 이날 통화를 하고 하마스의 공격을 ‘테러 행동’으로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정상들은 “우리는 국가와 국민을 그런 만행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노력을 지지할 것”이라며 “지금은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그 어느 측도 이런 공격을 이용해 이익을 추구할 때가 아님을 강조한다”고 밝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하마스의 행위를 강력히 비판하면서도 민간인 희생을 초래할 수 있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면 봉쇄에 우려를 표했다.
한편 가자지구에 대한 고사 작전은 막대한 민간인 피해를 낳을 것으로 우려된다. 가자지구는 2007년부터 시행된 이스라엘의 봉쇄 정책으로 생필품과 의약품 반입이 제한돼 심각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기·식량·연료 등의 공급이 추가 제한되면 가자지구에 사는 주민 약 237만 명(2022년 기준)은 인도주의적 참사에 내몰릴 수 있다. 이미 가자지구에서는 피란 행렬이 이어졌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가자지구 주민 12만 명 이상이 피란길에 올랐다고 집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