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초에 군이 공군 1∼3호 헬기를 교체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헬기들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타는 전용 ‘지휘헬기’이기 때문이다.
군 당국에 따르면 도입한 지 만15년이 넘은 대통령 전용 헬기(VH-92)의 교체 절차에 착수했다. 공군은 신규 대통령 전용헬기 도입의 필요성과 전용헬기가 갖춰야 할 성능, 예상 도입 시점 등과 관련한 문서를 합동참모본부에 제출했다. 군 전력 도입의 첫 단계인 ‘소요(所要) 제기’가 이뤄진 것이다. 이에 합동참모본부는 대통령 전용 헬기로 불리는 1∼3호 헬기를 교체할 필요가 있다며 공군이 제기한 소요를 결정했다.
이에 따라 방위사업청은 대통령 전용 헬기를 국내 개발과 국외 구매 중 어떤 방식으로 획득할지 검토하는 ‘선행연구’ 준비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선행연구 이후엔 방위사업추진위원회의 사업추진기본전략 의결, 사업타당성조사 등을 거치게 된다.
군 전력 도입은 ‘소요 제기-소요 결정-구매 및 기종 결정’ 등의 절차로 진행된다. 대통령 전용 헬기는 3대만 운영된다는 점에서 국내 개발보다는 현재 헬기와 마찬가지로 국외 구매 방식이 유력하다. 정부 소식통은 “국내 개발보단 기존처럼 해외 도입이 유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운용 중인 대통령 전용헬기는 미국 항공기 제조사 시코르스키의 14인승 헬기 S-92를 귀빈전용으로 개조한 VH-92 기종으로,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도입돼 16년째 사용하고 있다. 교체주기(10년)가 6년을 초과함에 따라 정부가 새 기종 도입에 나선 셈이다. 다만 1999년 김대중 정부에서도 교체가 결정된 후 8년이 지나서야 실제 도입이 이뤄졌다. 이번에는 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지만, 윤석열 정부 내에 도입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아울러 군은 신규 대통령 전용헬기 도입과 별도로 현재 운용 중인 전용헬기의 방어체계 등 성능 보완 작업도 병행해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전용헬기는 대통령이 탑승하는 헬기를 빼고 나머지 2대는 ‘위장 헬기’로 운용된다. 같은 기종의 위장 헬기를 동시에 띄워 대통령이 어떤 헬기에 탑승했는지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어 대통령의 안전을 지키는 조치다. 정부 소식통은 “새롭게 도입되는 기종은 적어도 수년이 소요되는 만큼 윤석열 대통령이 신규 대통령 전용헬기를 이용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며 “현행 전용헬기도 2005년 기종이 결정된 뒤 실제 운용까지는 2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전용 지휘헬기 말고도 ‘한국판 에어포스원’(공군 1호기)를 사용한다. 공군 1호기는 대통령 해외 순방 등에 이용하는 국가 안보의 핵심 설비다. 현 공군 1호기는 보잉 747-8i 기종으로 지난 2021년 10월에 새로 도입됐다. 이전 공군 1호기로 사용된 보잉 B747-400 기종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가 등을 끝으로 11년 만에 퇴역했다. 현재 운용 중인 전용기 747-8i 기종은 현존하는 대형 항공기 가운데 가장 빠른 마하 0.86의 순항 속도를 자랑한다. 최대 14시간에 1만4815㎞까지 운항할 수 있다. 747-400기종보다 운항거리가 약 2300km 길어졌다. 동체도 기존보다 더 커졌다. 정부는 대한항공과 임차 계약을 체결해 보잉 747-8i 기종을 5년(2021∼2026년)간 임차해 활용하고 있다.
해외 순방 때 이용하는 대통령 전용기와 달리 전용 지휘헬기는 지역 현장 방문을 비롯한 국내 단거리 이동에 투입돼 ‘하늘의 미니 집무실’로 통한다. 각종 무기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는 데 필요한 레이더 경보수신기와 적외선 방해장비, 미사일 추적 기만장치 등을 갖췄다. 당시 3대 도입에 예산 1,300억 원이 투입됐다.
S-92 기종 헬기는 미국 록히드마틴사의 자회사인 시콜스키가 제작한 기종이다. 이 기종은 최대 270km/h까지 속도를 낼 수 있고, 800km까지 비행이 가능하다. 첨단항법장비와 레이더, 광학열상장비도 탑재돼 주로 해양경찰청에서 구조헬기로 사용되고 있다. 국내에는 현재 S-92 기종이 총 5대가 있는데, 이중 공군이 3대를 보유 중이다. 그리고 3대의 S-92 헬기는 모두 대통령 전용헬기다. 시콜스키사의 중대형 헬기 S-92 기종을 VIP전용으로 개조한 게 현재 우리나라 대통령 전용헬기인 VH-92다.
미국의 대표적 헬리콥터 제작업체 시코르스키(Sikorsky)는 H-60 블랙호크(Blackhawk)와 민수형인 S-70을 개발해여 많은 양을 판매해 유명해졌다. 이후 뛰어난 기체 성능을 기반으로 기본형인 수송 헬리콥터 외에 해상작전 헬리콥터, 수색구난 헬리콥터, 그리고 민수용 헬리콥터까지 다양한 파생형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시코르스키는 S-92 헬리콥터를 H-60 기반이 아닌 새로운 설계로 개발해 많은 신기술을 적용했다. 동체는 알루미늄 구조물이 기본이지만 40% 정도가 복합재로 제작됐다. S-92의 동체는 H-60 계열보다 넓고 길어졌고 동체 후방 테일 붐 아래에는 화물 적재를 위한 램프(ramp) 도어가 채용됐다. 후방 램프 도어를 통해 캐빈으로 연결되지만 주로 승객 탑승은 동체 우측 슬라이드 도어를 통해 이뤄진다.
승객 편의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엔진 등에서 발생하는 진동을 감소시키기 위해 능동 진동 통제 시스템(Acitve Vibration Control Systems)을 채용했다. 메인로터와 테일로터는 결빙 방지를 위해 방빙 시스템(ice protection system)도 갖추고 있다. 전장은 동체 기준 17.1m, 메인로터와 테일로터 포함시 20.88m, 전폭은 스폰슨 기준 3.18m, 전고는 메인로터 허브까지 4.71m다. 메인로터는 직경 17.17m다. 동체 내부 캐빈은 길이 6.10m, 폭 2.01m, 높이 1.83m다. 랜딩기어는 3개로, 조종석 아래 1개, 스폰슨에 각 1개씩이 들어있고 비행 중에는 동체와 스폰슨 안으로 들어가는 접이식이다.
엔진은 2520마력의 제너럴일렉트릭(General Electric) CT7-8D 터보사프트 엔진 2개가 탑재됐다. 군용 모델인 H-92는 3070 마력의 제너럴 일렉트릭 CT7-8C 엔진을 장착한다. CT7 계열 엔진은 UH-60과 AH-64 헬리콥터에 사용된 T700 엔진의 민수형 버전이다. 기체의 공허중량은 수색구조용 S-92A 기준으로 7348kg이며, 최대이륙중량은 2만6500파운드(1만2000kg)다.
우리나라 대통령 가운데 전용헬기를 처음으로 활용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미국의 벨사가 만든 수송헬기 ‘UH-1’을 지휘헬기로 사용했다. 일명 ‘휴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UH-1는 베트남 전쟁 당시 맹활약했던 수송용 헬기다. 미군은 밀림과 하천으로 뒤덮은 베트남에서 대규모 헬리본 부대(헬리콥터를 이용한 부대 수송)를 동원해 작전을 펼쳤다. 그렇다 보니 UH-1가 임무수행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 무장체계가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 기관총과 유탄발사기 등을 추가하고, 나중에는 로켓과 미사일도 탑재했다. 그러나 미군은 더 체계적인 무기체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수송목적이 아닌 전투 목적의 헬기 ‘AH-1’을 만들었다. 전전후 공격능력을 갖추 공격헬기 ‘코브라’의 탄생이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는 전용헬기로 UH-1의 쌍발형인 ‘Bell 212’, ‘Bell 412’ 등을 이용했다. Bell 212는 미국 벨사가 만든 2엽 로터 헬기로 쌍발엔진이 특징이다. 엔진이 두 개라서 ‘트윈 휴이’라고 불린다. 212는 15인승으로 조종사 1인과 승객 14인이 탑승할 수 있다. 내부 화물 탑재공간은 220 ft³ (6.23 m³)이며 외부화물은 5000 lb (2268 kg)까지 운반이 기능하다. 미국 육군 UH-1 휴이는 벨사 205 헬기로 엔진이 하나다.
노태우 대통령 때에는 전용헬기에 변화를 주었다. 새로운 헬기가 추가하기로 결정하면서 2개의 기종을 운용했다. 프랑스의 ‘SA 330 퓨마’와 ‘UH-60’(블랙호크)이 그 주인공이다. 프랑스 에어로스페시알사가 1960년대 중반기에 개발한 헬기로, 뛰어난 성능과 확장성으로 세계 각 40여 개국이 사용하는 베스트셀러 헬기다. 이 기종은 추후 AS532 쿠거로 진화했고, 쿠거는 다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만든 수리온의 기본베이스로 사용됐다. SA 330 퓨마는 최대 16명이 탈수 있는 중대형 헬기다. SA 330 퓨마와 함께 전용헬기로 운용된 UH-60(블랙호크)는 UH-1을 기반으로 개량을 거친 다목적 전술을 위한 수송용 헬기다. UH-1이 수송헬기의 시작이었다면 UH-60은 완성형이란 평가를 받는 기종이다.
현재 운용하고 있는 미국 시코르스키의 S-92(VH-92)가 전용헬기로 선택받은 것은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이다. 노 대통령은 2007년 3대의 시콜스키 S-92를 도입한 후, VH-92로 개조했다. 노 대통령이 S-92 기종을 3대나 도입한 것은 VIP운용 전략이라는 경호처의 의견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기존 전용헬기의 경우 내부공간이 협소해 수행인원이 모두 탑승하기 어렵다는 점이 있다. 또 VIP가 탑승한 1번 헬기의 임무활동이 어려울 경우를 대비한 예비기체가 필요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대통령 전용헬기에 대한 테러를 미리 방지하기 위한 기만비행을 하기 위해 2대가 더 필요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도입한 VH-92 대통령 전용헬기는 현재 윤석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사용 중이다. VH-92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 터키 등 여러 나라에서 전용헬기로 운용할 만큼 각광받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문재인 대통령이 재임 당시인 2019년 10월1일 제71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 행사에 참석하면서 KAI가 만든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을 타고 행사장에 도착했던 경우다. 이는 그동안 탑승해 온 ‘공군 헬기 1호기’ 대신 국산 헬기의 안정성과 우리 방위산업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문 대통령이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에 탑승하고 행사장에 도착한 것이다. 당시 행사에서 장내 사회자는 문 대통령이 탑승함으로써 수리온 헬기가 대한민국 최초 ‘육군 1호기’가 됐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문 대통령인 탑승한 동안 최초의 국산 대통령 전용헬기로 기록됐다. 수리온은 2006년 기본설계 착수를 통해 개발에 나선 지 6년이 지나서야 완성된 헬기다. 한국형 다목적 헬기 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만큼 이름부터가 KUH-1 수리온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