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무장 정파 하마스와의 지상전을 경고하면서 가자주민 약 100만 명이 남쪽으로 대규모 이동하고 있지만 이집트와의 국경인 ‘라파 통로’가 차단돼 민간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유엔은 대피 시한이 촉박해 미처 피란을 떠나지 못한 주민들이 살상될 수 있다며 가자지구 주민 대피령을 거둬달라고 이스라엘에 호소했다.
14일(현지 시간) 외신에 따르면 북부 가자지구 주민들이 전쟁을 피해 남하하는 가운데 유일한 탈출 통로인 남부 도시 라파에서 이집트로 들어가는 길목이 막힌 상태다. 이집트 정부는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등 일부 이중국적자들에게 인도주의적 통로를 개설하겠다고 이날 오전 밝혔지만 라파 국경 통로는 열리지 않고 있다. 이집트는 오히려 가자지구와의 국경을 따라 군사력을 증강 배치하고 임시 시멘트 장벽까지 설치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집트 정부는 팔레스타인 난민이 대규모 유입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집트 정부는 이미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는 상황에서 가자지구 난민을 포함해 하마스 전투원들이 유입될 경우 심각한 정치·안보 위험이 초래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 가자지구 주민들에 대한 피란 허용 시 이들의 이집트 내 영구 이주로 이어져 기존 정착지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2개 국가’를 수립하기로 한 아랍권 전체의 구상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전망도 이집트 정부가 국경 개방을 꺼리는 이유다. 앞서 12일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팔레스타인의 어려움에 공감하며 인도주의적 지원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이집트의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시시 대통령은 “이미 이집트가 수단·시리아·예멘·리비아 출신 난민 900만 명을 수용하고 있다”며 “팔레스타인 국민들은 자신들의 땅에 머물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엔의 발표를 인용한 워싱턴포스트(WP)의 보도에 따르면 대피령 이틀째인 이날 가자지구 내 건물 1324채는 완전히 파괴됐으며 남쪽으로 이어지는 피란길은 대혼잡이 빚어졌다. 난민 모두가 라파 지역으로 몰려들면서 이곳 아파트에는 한 집에 30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으며 비좁은 환경으로 잠자는 것도 불가능하다. 남쪽으로 이동하는 민간인들이 이스라엘 공습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며 피란길에 오르지 못한 주민들도 많다. 전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NYT 기고문에서 “극히 짧은 시간에 대규모 인원의 대피를 명령하는 것은 심각한 인도주의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대피령 재고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