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위기의 창업가를 보호하자

김영덕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대표


투자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예년 같으면 무난히 투자받고 생존했을 스타트업이 폐업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올 9월에만 스타트업 대표님 세 분이 폐업한다고 연락해왔다. 가진 모든 자원을 몇 년간 쏟아부었지만 더는 버틸 힘이 없어 회사를 정리하게 됐다고 한다. 폐업을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필자도 가슴이 아리다. 당장에는 도망치고만 싶은 심정이더라도 다음에 더 잘하기 위해서는 폐업 과정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꼭 당부드린다.


침몰하는 스타트업이라도 창업자는 구출해야 한다. 귀한 인적자원이기 때문이다. 창업자는 고객이 겪는 문제를 파악해 해결 방안을 도출하고, 사람을 모으고, 기술을 개발해 제품화를 해본 인재다. 그뿐인가. 투자를 유치하고 매출을 만들어낸 경험도 있다. 20년 경력의 대기업 임원 출신을 데려와도 창업으로 매출을 낼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자기 사업을 일구기 위해 크고 작은 의사 결정을 매일 해본 인재들인 만큼 국가적 차원에서 지켜야 한다. 죽어가는 기업을 심폐 소생시키자는 말이 아니다. 냉혹하게 들릴 수 있지만 기업 생태계 관점에서 불경기에 많은 기업이 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생태계에는 삶과 죽음이 있고 죽음은 새로운 삶을 촉진하는 원천이 되기 마련이다. 과거에는 폐업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 부양책을 쓰기도 했지만 길게 보면 이런 인위적 구제가 시장의 선택을 부정하고 해당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그렇다면 창업자를 어떻게 도와야 할까. 우선 폐업하면서 발생하는 법적 문제를 창업자가 원만하게 처리하도록 법률적 지원이 필요하다. 임직원 노무 문제와 거래처 채무 문제 등에 실수 없이 대처하도록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창업자의 정신건강을 살피는 일이다. 디캠프가 지난해 분당서울대병원과 공동 발간한 ‘스타트업 창업자 정신건강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창업자들은 일반 성인보다 스트레스나 우울감 등에 취약했다. 중간 수준 이상의 우울을 겪는 비율이 32.5%로 전국 성인 평균치인 18.1%와 비교해 2배 가까이 높다. 폐업을 겪는 창업자의 취약한 마음이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지지 않게 심리상담을 지원하는 등 창업자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지원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선배 창업자나 투자자도 나서서 이들의 마음을 보듬어줘야 한다. 디캠프에서 창업자 정신건강 실태 조사를 시행하고 창업자 일대일 심리상담, 마인드케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유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사회가 잘 보호한 창업자는 시간이 지나 다시 창업해서 사회를 혁신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우리 사회를 더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창업 과정으로 이미 검증된 소중한 인재를 사회적 차원에서 지켜내자. 가라앉는 폐업 기업에서 소중한 인재인 창업자를 구해내고 그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마음을 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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