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장애인이 돈을 인출하려면 반드시 창구에 가도록 하고 액수가 클 경우 한정후견인과 동행하도록 한 우체국 은행의 과거 규정에 대해 대법원이 정당한 이유 없는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고모 씨 등 지적 장애인 18명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장애인 차별행위 중지'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의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지난달 27일 확정했다.
고 씨 등은 2018년 1월 법원에서 한정후견개시 심판을 받았다. 한정후견은 질병이나 장애, 노령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후견인을 지정해 법률 행위 등 후견 사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제도다.
당시 법원은 지적 장애인이 금융 거래를 할 때 인출일 전부터 30일을 합산해 거래 금액이 100만 원을 넘으면 한정후견인의 동의를, 300만 원이 넘으면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그러나 우체국 은행은 이 범위를 초과해 지적 장애인이 돈을 인출하려면 반드시 통장과 인감을 지참해 은행 창구에서만 거래할 수 있게 했다. 100만 원 이상이면 한정후견인이 창구까지 동행하도록 강제했다.
고 씨 등은 이 같은 행위가 차별이라며 2018년 11월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30일 합산 100만 원 이상 거래의 경우 '동의서' 제시에 의한 방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한정후견인과 동행을 요구하는 행위를 중지하라"고 판결했다. 아울러 우체국 은행이 원고 1인당 50만 원씩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덧붙였다.
2심에서도 차별 중지 명령은 유지됐다. 다만 우체국 은행이 2020년 6월부터 내부 지침을 수정해 차별을 멈춘 점을 고려해 배상금 액수를 1인당 20만 원으로 줄였다.
대법원 역시 "피한정후견인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조치나 제한이 필요한지는 후견 사건을 담당하는 가정법원이 심리 절차를 거쳐 판단하는 것"이라며 "피한정후견인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우정사업본부 등이 임의로 제한하는 것을 정당화할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며 2심 판결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