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2분기 말 기준 101.7%로 세계에서 스위스·호주·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로 높다. 국내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 증가분은 7월 5조 9000억 원, 8월 6조 9000억 원, 9월 4조 9000억 원이었다.
이러한 가계부채 증가세에 대한 우려가 여러 방면에서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가계부채 증가로 차주의 부실 위험이 커져 금융 시스템이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특히 2008~2009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의 시발점이 서브프라임 대출의 지나친 확대였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핵심은 그것이 대출의 질 악화를 동반했고 이로 인해 발생한 금융 시스템의 위기가 결국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됐다는 데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가계대출 증가 시기에 대출의 질은 오히려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한 예로 2013~2017년 주택담보대출 총액이 400조 원에서 600조 원으로 1.5배 가까이 늘어났을 때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2013년 0.95% 정도에서 2017년 0.3%로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나아가 이 시기에 신규 대출 차주의 소득 분포와 신용점수 분포는 오히려 개선됐다. 결국 우리나라의 경우 대출 총량 증가가 대출의 질 악화를 의미하지는 않으며, 따라서 가계대출 증가 양상이 미국의 서브프라임 금융위기와는 다르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규모가 크고 증가세가 가파른 것은 어떤 위험이 있을까. 아마도 거시 건전성 측면(은행권)에서의 위험이라기보다는 개별 차주별(가계) 소비 제약으로 인한 영향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가계대출 차주별 데이터를 사용한 최근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금리 상승기 동안 30% 정도 차주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5% 이상 상승했으며 이는 금리 상승으로 인한 가계의 부채 부담 증가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같은 부채 부담 증가에 따른 가계의 소비 여력 감소는 결국 거시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소비를 제약함으로써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최근 가계부채 디레버리징(부채 감축)의 구체적 방안으로 이자율 조정을 통한 신용 증가 억제가 논의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 방안은 인플레이션이 중앙은행의 목표치를 밑돌더라도 이자율을 올려 신용 붐(boom)과 부동산 붐을 완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안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역사적 사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 중앙은행이 2011~2013년 이 같은 정책을 시행한 결과 신용 붐과 부동산 붐은 지속된 반면 성장은 둔화하고 인플레이션은 마이너스가 돼 결국 2014년 폐기했다.
통화 당국과 금융 당국은 자신의 정책 수단을 사용해 금리 이외의 방식으로 가계대출 증가세에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통화 당국은 고금리가 장기화될 가능성에 대한 선제적 지침을 통해 ‘당분간 주택 구입과 위험자산 투자가 수익성 차원에서 매력적이지 않다’는 시장의 경고를 강화하고 금융 당국은 DSR 제도의 예외 적용을 최소화는 등 엄격한 DSR 규제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