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에 궁여지책…전단채 잔액 8.6조 급증 [시그널]

19일 일반 전단채 잔액 28조 7219억 원
8월 말 대비 두 달도 안돼 8조 6547억 원↑
연말까지 만기 도래 공모채 규모 약 7조 원
“고이자비용 부담 줄이기 위해 단기채 선호”

미국 국채금리 급등으로 인한 회사채금리 상승과 기관투자가 장부 마감 등으로 채권시장 투자심리가 얼어붙으며 단기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당장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공모채 규모만 7조 원이 넘어 일부 우량 등급을 제외한 기업들은 단기사채나 은행 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현재 일반 전자단기사채 잔액은 28조 7219억 원으로 지난달 말(25조 140억 원) 대비 3조 7079억 원 늘었다. 8월 말(20조 672억 원)과 비교하면 두 달여 만에 8조 6547억 원 늘어난 것이다. 7월 말 22조 7178억 원이던 전단채 잔액은 8월 말까지 소폭 줄었지만 최근 미국 국채금리 상승세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등에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규모가 급증했다.





전단채는 금융기관 및 일반 회사가 발행하는 만기 1년 이하의 단기사채다. 발행, 유통, 권리 행사 등이 전자적으로 처리된다. 실물로 발행하는 기업어음(CP)에 비해 단기자금 조달이 편리하다. 고금리 장기화로 3분기 발행 규모(125조 7000억 원) 자체는 전년 동기 대비 23.9% 감소했지만 채권 전문가들은 금융시장 불확실성 확대가 최근 단기채 발행 규모를 다시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광열 NH투자증권(005940) 연구원은 “시장금리가 높아짐에 따라 기업들은 높은 이자비용의 장기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장기채보다 단기채 발행을 선호하게 된다”며 “(이자율이 높은) 단기채에 대한 투자 수요가 큰 점을 감안할 때 향후 단기채 발행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실제 글로벌 시장의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10년물 미 국채금리가 한때 16년 만의 최고치인 연 4.97%까지 치솟으면서 회사채금리는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신용등급 ‘BBB-’의 3년 만기 회사채금리는 전일 대비 4.1bp(1bp=0.01%포인트) 오른 연 11.266%에 마감했다. ‘AA-’ 3년물은 4.2bp 오른 4.872%였다.


문제는 올해 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규모가 공모채 기준으로만 약 7조 700억 원에 달해 기업들의 차환 자금 수요가 높다는 점이다. 비우량채(신용등급 ‘BBB-’~‘A+’) 만기 물량은 2조 800억 원이다.


이에 개별 기업의 신용등급, 현금성 자산 규모 등에 따라 자금 조달 전략에 차이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공모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여력이 있는 일부 우량 기업들은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신용등급 ‘AA’의 연합자산관리(유암코)는 이날 2500억 원 규모의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9500억 원의 매수 주문을 받았다. 2년물(700억 원), 3년물(1100억 원), 5년물(700억 원)로 종목을 나눠 각각 민평금리(민간 채권 평가사들이 평가한 기업의 고유 금리) 대비 29bp, 18bp, 6bp에서 모집 물량을 채웠다. 전일 유암코의 3년물 민평금리가 4.703%였으니 조달금리는 8월 말 4.416%로 발행했을 때보다 약 0.4%포인트나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하위 등급의 기업을 포함해 높아진 금융 비용을 장기간 부담할 여력이 없는 기업들은 단기금융시장 조달 혹은 은행 대출을 더욱 늘릴 수밖에 없다. 한 증권사 부채자본시장(DCM) 부서 관계자는 “지금 회사채 발행에 나서는 기업은 대부분 ‘완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곳들”이라며 “4분기 발행을 준비했던 기업들 가운데 내년 초로 아예 일정을 연기한 곳도 있다”고 전했다.


기업들은 단기사채에 더해 은행 대출도 늘리고 있어 은행채금리와 은행 대출금리 상승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자금 조달 환경이 악순환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혜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 입장에서는 회사채 발행 수요가 존재하나 시장에서 소화가 어렵기 때문에 2023년에도 은행 대출 의존도가 높을 것”이라며 “비우량 기업들의 은행 대출 선택은 은행채 발행으로 이어지며 연쇄적인 약세 압력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대기업의 은행 대출 규모는 약 119조 원으로 전년(94조 원) 대비 약 25조 원 급증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