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왕자 햄릿은 심각한 고민에 잠겨 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어느 날 유령으로 나타나 자신이 숙부인 클로디어스에게 살해당했다고 주장하고 나섰거든요. 화나는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어머니인 거트루드 왕비마저 클로디어스와 재혼을 올린 거예요. 아버지의 죽음 이후 햄릿의 세상은 송두리째 바뀌었는데, 복수심은 들끓지만 생각처럼 원수를 갚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고뇌에 찬 햄릿은 한 마디를 내뱉죠.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런가 하면 이탈리아의 베로나 공국에서는 달콤한 사랑이 스멀스멀 싹트고 있습니다. 몬태규와 캐퓰릿 가문은 대대로 사이가 좋지 않아 걸핏하면 싸우기 일쑤였는데, 무도회에서 우연히 마주친 두 가문의 소년, 소녀가 첫 눈에 반해버린 거예요. 이후 로미오는 캐퓰릿 가문의 저택의 발코니에 숨어들어가 줄리엣과 만납니다. 은은하게 빛나는 달에게 사랑을 맹세하는 로미오. 줄리엣은 말하죠. “변덕스러운 달에게 사랑을 맹세하지 마세요. 달은 차고 기울어요. 저는 당신의 마음 또한 변할까봐 걱정돼요.” 로미오와 줄리엣은 집안의 반대를 이겨내고 사랑의 결실을 거둘 수 있을까요?
굳이 작품의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이 두 작품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계실 텐데요. ‘햄릿’과 ‘로미오와 줄리엣’은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이죠. 오는 12월 3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은 두 작품을 집필하면서 셰익스피어가 겪는 좌충우돌 이야기를 그립니다.
작품 속에서 셰익스피어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극작가지만, 평론가들의 비평에 자신감을 잃기 일쑤입니다. 작품을 쓰면서 그가 꼭 다짐하는 것은 단 한 가지인데요. 시대를 풍미하는 명작을 만들고야 말리라는 다짐이죠. 그러면서 ‘햄릿’과 ‘로미오와 줄리엣’을 바쁘게 완성하는 중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두 작품의 색깔이 다르다는 점이에요. 햄릿은 복수를 부르짖으며 칼을 들고 뛰어다니고, 로미오는 느끼한 데다 어딘가 나사가 빠져 있습니다. 줄리엣은 ‘요조숙녀’의 표본 같은 인물로서 로미오와 막 사랑에 빠지려는 찰나이고요. 하지만 갑자기 바람이 불어 두 작품의 원고들이 마구 뒤섞이고야 맙니다. 작품 속에서 대본은 하나의 세계이기 때문인지, 햄릿과 줄리엣이 한 공간에 놓이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죠.
뮤지컬은 경쾌한 넘버들과 셰익스피어의 능수능란한 1인 다역 연기를 통해 즐거움을 자아냅니다. 셰익스피어는 캐릭터를 창조한 장본인이기 때문에 오필리어도, 줄리엣의 유모도, 케퓰렛 공도 될 수 있거든요. 셰익스피어는 자신을 이루는 조각을 떼내어 인물들에게 특징을 입혀주고 이야기의 역할을 수행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햄릿과 줄리엣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일부였던 캐릭터들은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햄릿은 펜과 노트를 들었고, 줄리엣은 칼을 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실제 셰익스피어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되지만, 무엇이 중요할까요. 이야기의 끝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건 거꾸로 말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이잖아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기 때문에, 작품 속 캐릭터를 비트는 이야기들도 매번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일 테죠. 올해에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다양하게 변주되어 무대에 펼쳐졌는데요. 지난 6월에는 국민 배우 이순재가 ‘리어왕’으로 분하기도 했고, ‘베니스의 상인들’이 국립창극단의 창극으로 재탄생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달 세계 최정상 발레단인 모나코의 몬테 카를로 발레단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발레로 옮긴 무대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그러면서 가장 저명하고, 대중들의 인기를 한몸에 사로잡은 작품이기도 하죠. 어릿광대 요릿의 해골을 들고 독백하는 햄릿의 이미지는 서양의 수많은 작품 속에서 되풀이되어 등장하곤 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햄릿형 인간’이라는 용어도 여기서 등장했습니다. 무엇인가를 결심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사람을 이르는 말입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머리가 복잡한 햄릿에게 조금 가혹한 감은 있는 용어네요.)
이런 ‘햄릿’과 아주 유사한 작품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16세기 영국의 극작가 토마스 키드가 일찍이 저술한 희곡 ‘스페인 비극(1592)’이 바로 그것인데요.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대에 영국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통치 하에 예술이 꽃피는 시기를 거쳤죠. 이때 당시 복수를 그린 작품이 유행을 했다고 하는데, ‘스페인 비극’은 이러한 작품들의 원류가 됩니다. 셰익스피어도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고요. 셰익스피어의 ‘햄릿’ 이전에 모티브가 되는 ‘햄릿’이 있었다는 가설도 있는데, 이 작품 또한 키드가 지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스페인 비극’은 아들 호레이쇼가 억울하게 살해당했다는 점을 알게 된 아버지 히에로니모가 복수에 나선다는 줄거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햄릿’은 큰 줄거리는 같지만, 인물의 설정이 이와 반대이죠. 또 두 작품 모두에서 유령이 등장한다는 점도 특징적입니다.
다만 눈에 띄는 다른 점도 있습니다. ‘스페인 비극’에서 히에로니모는 극중극을 통해 장렬하게 복수를 완결짓지만, 햄릿은 그렇지 못합니다. 끊임없이 유령이 말해준 진실을 의심하는 햄릿에게 극중극은 클로디어스의 부정을 증명하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모든 영문학과 대학생들에게 살아야 하는지, 죽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한 ‘햄릿’이 셰익스피어의 상상력만으로 탄생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흥미롭지는 않나요? 그렇다고 해서 ‘햄릿’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셰익스피어의 ‘말맛’이 담긴 대사와 한층 입체적으로 변한 햄릿의 정신 세계는 복수에 대한 깨달음을 낳잖아요. 죽어야 하는 사람이 죽었지만, 햄릿 또한 응당한 살인의 대가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을 통해 선량하기에 고민하는, 미치고 싶기에 미치지 못하는 한 인간의 아이러니를 내밀하게 그려냈습니다.
서울시뮤지컬단은 연말 셰익스피어의 또 다른 비극 ‘맥베스’를 처음으로 뮤지컬로 선보일 것이라는 발표를 하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지난 4월에는 국립오페라단이 베르디의 오페라 ‘맥베스’를 무대 위에서 펼치기도 했고요.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햄릿’이 복수, ‘리어왕’이 무지, ‘오셀로’가 질투로 인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작품이라면, ‘맥베스’는 욕망 때문에 파멸을 맞이하는 인물을 그립니다. 스코틀랜드의 장군 맥베스는 어느 날 반란을 진압한 후 광야에서 마녀를 만나 자신이 왕의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습니다. 함께 있던 친구 방코의 자손들도 왕위에 오를 것이라고도 했죠.
‘맥베스’에서 주인공인 맥베스만큼이나 눈에 띄는 인물이 멕베스의 부인인 레이디 맥베스인데요. 야심이 가득한 그는 맥베스를 설득해 왕을 암살하도록 하죠. 이후 맥베스는 왕의 자리에 오르며 예언을 실현하나 싶었지만, 권력을 견제하려는 욕심에 그만 친구인 방코를 죽이고 맙니다. 친구마저 죽인 그는 광기에 물들어 가고, 레이디 맥베스도 죄책감에 스스로 생을 마감해버리죠. 이런 상황에서 마녀들은 또 다른 예언을 남깁니다.
작품은 운명의 필연성을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세 마녀의 존재로 초현실적인 성격이 작품 곳곳에 감돕니다. 예언은 속속 맞아 떨어지고, 맥베스는 이를 맹신하며 위험한 행동을 늘어놓죠. 하지만 결국 예언을 통해 왕위를 쟁취하고 사람을 살인하는 것은 맥베스 안에 잠재되어 있던 욕망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번 뮤지컬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제작되는 뮤지컬판 ‘맥베스’라고 하는데요. 원작 속 세 마녀 또한 맥베스의 돌아가신 아버지와 맥베스가 전쟁 중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들, 희망을 가지던 청년 시절의 맥베스로 바뀌어 현대적인 욕망을 묘사할 예정입니다. ‘인사이드 윌리엄’에서 줄리엣을 맡은 뮤지컬 배우 이아름솔이 이 작품에서도 레이디 맥베스인 ‘맥버니’를 맡는다고 하니 궁금함을 유발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