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에 등장한 '틱톡 50' 차트…K-팝 위상 떨칠까 [허지영의 케잇슈]


요즘 가요계에는 무슨 일이 있을까? 허지영 기자가 친절하게 읽어드립니다.



빌보드 '틱톡 50' 차트 / 사진=빌보드 홈페이지

빌보드에 '틱톡 50' 차트가 신설됐다.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 틱톡(Tiktok)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곡을 집계하는 차트다. 이 차트는 기존 음악 스트리밍 수가 아닌 틱톡 플랫폼 내 창작물·비디오 조회수·사용자 참여율 기반을 모니터링한다. 80년 역사의 빌보드 차트에서 창작물과 비디오 조회수로 순위를 매기는 차트는 이 차트가 최초다.


'틱톡 50' 차트는 지난 9월 16일 처음 발표돼 21일 이날 기준 5번 차트를 경신했다. 그간 Sexyy Red의 'SkeeYee', FamousSally & YB의 'Wassup Gwayy', Mitski의 'My Love Mine All Mine' 등이 정상에 올랐다. 모두 틱톡에서 챌린지로 명성을 얻은 곡이다. 현재까지 K-팝이 이 차트에 든 적은 한 번도 없다. 그간 SNS 차트에서 강세를 보여오던 K-팝이 '틱톡 50' 차트에서도 위상을 떨칠 수 있을까.



2023년 10월 16일 기준 빌보드 '틱톡 50' 차트 / 사진=빌보드 홈페이지

◇사클·트위터·틱톡...시대 맞춰 옷 갈아입는 빌보드 = 1940년대 시작돼 가장 영향력 있는 차트로 자리매김한 빌보드는 달라지는 음악 소비 방식에 발맞춰 차트를 개선해 왔다. 요컨대 실물 앨범을 구매하는 음반 시장에서 디지털 음원을 스트리밍하는 음원 시장으로 넘어간 음악 시장의 변화에 맞춰 음반 메인 차트인 '빌보드 200'에 음원 스트리밍 점수를 반영한 점 등이다. 이 차트는 앨범 판매량을 주로 반영하는데, 음반을 구매하는 것이 아닌 스트리밍으로 음반을 들어도 점수가 반영되도록 한 것이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SNS에 관심을 쏟았다. 2010년 신설된 '소셜 50' 차트는 트위터(현 X)·페이스북·유튜브·비보·마이스페이스·아이라이크 등 SNS의 언급량을 반영한 차트다. 차트가 신설될 당시에는 없었지만, 2012년부터는 전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스트리밍 플랫폼 사운드 클라우드와 SNS 인스타그램을 추가하는 등 SNS의 동향을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했다.


약 10년쯤 지난 2021년에는 SNS 중에서도 트위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소셜 50' 차트를 잠정 폐지하고 '빌보드 핫 트렌딩 송즈 차트 파워드 바이 트위터(Billboard Hot Trending Songs Powered by Twitter, 이하 '핫 트렌딩 송즈 차트')'를 신설한 것. 이 차트는 최근 24시간 또는 최근 7일 동안 트위터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곡의 실시간 순위를 매긴다. 2021년 당시 트위터 이용자 수는 미국 기준으로 약 7,000만 명에 육박했는데, 이들은 주로 해시태그(#)를 이용해 음악을 언급하고 소비했다.


◇빌보드 SNS 차트 씹어먹은 K-팝 팬덤 = 빌보드의 SNS 차트는 그간 K-팝의 독무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작은 방탄소년단이다. 방탄소년단은 곡 '피 땀 눈물'을 발매한 해인 2016년 10월 처음으로 '소셜 50' 1위에 오른 뒤, 2017년 7월 29일부터는 2년 연속 1위를 지켰다. 팝 스타 저스틴 비버의 기록(56주 연속 1위)을 압도적으로 꺾은 기록이다. 방탄소년단을 필두로 K-팝 그룹은 '소셜 50'을 장악해 나갔다. 2018년 11월 말에는 엑소·NCT 127·몬스타엑스·세븐틴·트와이스·샤이니·아스트로·스트레이 키즈·펜타곤 등 차트의 1/3에 달하는 18개 그룹이 이름을 올렸다.



2021년 10월 23일 기준 빌보드 '핫 트렌딩 송즈' 차트 / 사진=빌보드 X(구 트위터)

'핫 트렌딩 송즈 차트'에서도 K-팝 그룹의 기세는 여전했다. 2021년 10월 신설 당시 차트에는 방탄소년단(1위)을 시작으로 블랙핑크 리사(2, 3위) 엔하이픈(4위), 에스파(6위), NCT 127(8위) 등이 이름을 올려 20개 순위 중 15개가 K-팝 아티스트였다. 차트 신설 3년 차인 올해도 다수 K-팝 아티스트가 선전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방탄소년단의 데뷔 10주년 기념 음원 '테이크 투(Take Two)'가 1위에 올랐으며 NCT 127, 스트레이 키즈 등이 뒤를 이었다. 신인 아이돌도 자주 이름을 비추는 편이다. 지난달 신인 걸그룹 비춰(VCHA)가 프리 데뷔곡 '와이.오.유니버스(Y.O.Universe)'로, 베이비몬스터가 프리 데뷔곡 '드림(DREAM)'으로 1위를 거머쥔 바 있다.


K-팝 아티스트가 SNS에서 강세를 보이는 건 '팬덤'의 영향이 크다. 2016년 방탄소년단이 트위터를 활용해 마케팅을 시작한 이후 전 세계 K-팝 팬덤이 트위터에 운집해 '음악 교류의 장'을 형성했다. 결속력이 강한 K-팝 팬덤에 트위터는 유일무이한 SNS로 자리매김했다. 팬덤이 힘을 모아 행동한다는 '총공' 문화도 트위터에서 발생했다. 컴백 당일이면 아티스트명과 앨범명이 들어간 해시태그를 반복해서 트윗해 '실시간 트렌드'에 오르게 하는 식이다. 국내 연예기획사도 최근 아이돌의 컴백 프로모션에 트위터 프로모션(광고)을 추진하는 추세다.



틱톡 로고 / 사진=틱톡

◇10억 틱톡 유저에게 'K-팝'이란? = 틱톡은 '구글'보다 인기가 많다. 지난해 1분기를 기준으로 15억 명 이상의 활성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중 대다수가 10대다. 사용자 4명 가운데 1명은 20세 미만이다. 이들은 틱톡에서 음악 콘텐츠를 생산하고 감상하는 것 뿐만 아니라 정보 검색도 한다. 틱톡이 단순히 동영상 재생 플랫폼을 넘어 포털 사이트의 기능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언급량'을 주로 수집하는 트위터와 비교해 틱톡이 다른 점은 사용자가 음악 콘텐츠를 재생산한다는 데 있다. 누구나 쉽게 음악으로 영상을 만들고 공유할 수 있다. 특정 음악을 1분 이하로 발췌해 상황극을 찍거나 춤을 추는 참여형 콘텐츠 '챌린지'다. 한번 유행하면 글로벌 스타가 되는 건 시간 문제다. Z세대 대표격 아티스트로 떠오른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드라이버스 라이선스' 챌린지로 단숨에 스타가 됐다. 틱톡에 따르면 지난 2021년 틱톡 플랫폼에서 흥행한 곡 중 175개 곡이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인 '핫 100'에 이름을 올렸다. 틱톡에서 흥행한 음악이 대중가요를 주도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피프티 피프티 '큐피드' 빌보드 '핫 100' 진입 / 사진=어트랙트

K-팝 아티스트도 틱톡의 영향권에 있다. '중소의 기적'으로 불린 걸그룹 피프티 피프티의 곡 '큐피드'가 대표적이다. 지난 2월 한 인도네시아 유저가 올린 '스페드 업(Sped up, 노래 속도를 원곡에 비해 130∼150%가량 배속해 만든 2차 창작물)' 버전이 입소문을 타더니 다음 달 빌보드 '핫 100'에 진입했다. 이후 이 곡은 21주나 차트에 머무르며 장기 흥행했다. 이채연의 곡 ‘노크(knock)'도 틱톡의 댄스 챌린지 열풍으로 역주행한 대표적인 사례다. 동향을 따라 최근의 K-팝 아이들도 곡과 안무에서 챌린지 파트를 따로 만드는 추세다. 스테이씨, 틴탑, 방탄소년단 정국 등 세대를 가리지 않고 많은 아이돌은 타이틀곡의 스페드 업 버전을 정식으로 앨범에 수록하고 틱톡 마케팅에 나섰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틱톡 50 차트를 본격적으로 의식하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요즘 들어서는 틱톡을 통한 마케팅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오히려 회사보다 아티스트가 틱톡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아티스트가 직접 챌린지 마케팅을 만들어 오거나 제안하는 경우도 많다. 음악 방송 녹화 대기실에 가보면 아티스트들이 서로 챌린지 '품앗이'를 하느라 정말 바쁘다"며 "다만 챌린지에만 매달리다 보면 음악성에 지장이 갈 수 있으니 여러모로 고심해 챌린지를 만드는 편"이라고 전했다.



가수 이채연의 '노크' 챌린지 갈무리 / 사진=틱톡

틱톡 앱 내 K-팝의 입지는 점점 확산하는 추세다. 틱톡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kpop'이라는 해시태그는 기존 음악 장르인 ▲팝(318억 뷰) ▲힙합(698억 뷰) ▲락(391억 뷰) 수를 상회하는 4,148억 뷰를 기록했다. 특히 동남아시아 지역 틱톡 이용자의 기여도가 크다. 틱톡 자체 설문조사에 따르면 동남아시아 이용자의 92%가 틱톡에서 한국 콘텐츠를 접한 것을 계기로 K-팝을 비롯한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틱톡의 최대 이용자 국가는 미국(약 1억 2,200만 명), 인도네시아(약 9,980만 명), 브라질(약 8,333만 명) 순이다. 틱톡은 월드 투어 등의 순회 공연보다도 동남아시아 K-팝 팬덤을 발굴하고 움직일 수 있는 최단 경로다. 또 다른 피프티 피프티가 탄생할 가능성은 활짝 열려 있는 셈이다.


틱톡 관계자는 "틱톡 플랫폼 내 K-콘텐츠의 파급력이 상당하며 특히, 음악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오래전 과거에 국내에서 발매되었던 음악이 갑자기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스트리밍 수가 급증해 빌보드 차트를 역주행하는 사례도 발생한다"며 "훌륭한 음원을 갖추었지만, 유통 전략이 아쉬웠던 국내 아티스트 및 음반사에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으며, 이러한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음원 홍보를 위해 틱톡을 활용하려는 아티스트, 음반사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기대했다.


다만 아직 '틱톡 50' 차트에서 K팝의 성적을 점치기에는 시기상조다. 챌린지·숏폼 등 이전 SNS와 확연히 다른 콘텐츠의 성격 때문에 K-팝이 빌보드의 이전 SNS 차트처럼 독식하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한 번 유명세를 타면 폭발적인 파급력을 가진다는 점, 틱톡 내 K-팝의 입지 등을 감안하면 해당 차트는 이전 SNS 차트보다 훨씬 더 존재감 있는 차트가 될 수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틱톡을 통해 팬덤이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틱톡은 K-팝에게 굉장히 유리한 지점이지만, 현재 '틱톡 50'차트는 저변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단기간에 굉장히 글로벌한 인기를 만드는 데 틱톡이 영향력을 많이 미치는 만큼, '틱톡 50' 차트에 K-팝 아이돌이 차트에 든다면 이전 차트 이상으로 다른 차트에서도 주목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