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006400)와 현대자동차그룹이 처음으로 전기차 배터리 공급계약을 맺었다. 반도체 등 전장에 이어 배터리로 두 그룹의 협력 범위가 넓어지며 미래차 동맹이 본격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SDI는 현대차(005380)가 유럽에서 생산할 전기차에 2026년부터 2032년까지 7년 동안 배터리를 공급한다고 23일 밝혔다. 공급 물량은 전기차 50만 대분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번 계약으로 삼성SDI는 현재 개발 단계인 6세대 각형 배터리 ‘P6’를 현대차에 공급한다. P6는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양극재의 니켈 비중을 91%로 높이고 음극재에 독자 실리콘 소재를 적용해 에너지 밀도를 극대화한 제품이다. P6는 삼성SDI 헝가리 공장에서 생산해 현대차 유럽 공장에 납품된다.
삼성SDI와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배터리 공급계약을 맺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차 아이오닉5, 기아(000270) EV6·EV9, 제네시스 GV60·GV70 등에는 SK온 배터리가 탑재됐고 현대차 코나EV와 아이오닉6는 LG에너지솔루션(373220)의 배터리를 사용했다. 이번 계약을 계기로 현대차는 국내 배터리 3사와 모두 배터리 공급계약을 맺었다.
주로 파우치형 배터리를 사용하던 현대차가 각형 배터리를 사용하며 폼팩터를 다양화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도 있다. 폼팩터는 배터리 팩의 구조 형태로 크게 파우치형·각형·원통형으로 나뉜다. 삼성SDI가 주력으로 제작하는 각형 배터리는 내구성이 뛰어나 다른 배터리보다 안정성이 높다. 메르세데스벤츠·BMW·아우디·포르쉐·폭스바겐 등 주요 완성차 제조사들이 각형 배터리를 채택하는 이유다.
현대차 관계자는 “주력인 파우치형뿐 아니라 각형·원통형 등 셀 폼팩터를 다양화해 차종과 지역별 상품성 차별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측의 배터리 협업은 3년 전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 정 회장은 삼성SDI 천안사업장을 방문해 이 회장과 전기차 배터리 생산 현장을 둘러보고 사업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 이후에도 양측은 배터리 관련 교류를 이어왔고 계약 체결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과 현대차그룹이 전장 사업에서 협력 수준을 높여온 만큼 이번 계약을 계기로 양측의 미래차 동맹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를 현대차 아이오닉5에 공급한 데 이어 제네시스 GV60에 삼성전자의 차량용 이미지센서가 탑재되며 두 그룹의 협력이 본격화했다. 이후 삼성전자가 자동차의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현대차에 공급하며 협업에 속도가 붙었고 삼성전기(009150)는 최근 현대차·기아 차량에 카메라 2종도 직접 납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