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여기가 텅텅 비었습니다“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행렬을 기다리던 이 모(54) 씨가 가슴을 연거푸 쳤다. 이 씨는 1년 전 이태원 참사 때 20대 아들을 잃었다. 이 씨는 "건강하고 심성이 곧던 아이가 한 순간에 세상을 떠났다"며 "지금 앞을 막고 있는 저 많은 경찰 중에 단 몇 명만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내 아이는 죽지 않았다"고 울먹였다. 이 씨의 목 뒤를 긁어대던 울음은 곧 울부짖음이 됐다. "내 새끼 살려내. 내 자식 살려내" 이 씨의 목소리가 사방을 찔러댔다. 이 씨의 뒤로 마른 낙엽이 떨어졌다.
29일 오후 이태원 참사 추모행렬에 참석한 3000여 명이 대통령실 앞 1차선에 길게 늘어섰다. 나이 지긋한 노인부터 어린아이까지 남녀노소 구분 없이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했다. 10살 남짓한 아프리카계 아이도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으며 종교계 인사들도 행렬에 참여해 힘을 보탰다. 이날 발언대에 올라선 유현호 씨는 "우리의 아들과 딸이 돌아오지 않은 지 1년이 됐다"며 윤 대통령을 향해 "159명의 영정 앞에 서서 진정어린 눈물과 사과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이태원 참사에서 아들을 잃은 김 모(52) 씨는 경찰들의 통제가 과도하다고 지적하며 답답해했다. 대통령실 앞으로 쳐진 질서유지 장비를 보며 "대통령실 앞을 통제하는 저 모습을 보면 우리를 폭도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며 "우리를 막고 있는 저 많은 경찰들은 우리 아이가 죽을 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어 "대통령은 사과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과하지 않는 이유는 죄가 많기 때문이고, 사과하면 문제를 인정하는 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희생자가 지인이 아님에도 참석한 시민들도 있었다. 서울 관악구에 거주하는 김 모(30) 씨는 "'내가 그곳이 있을 수 있었다'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아 추모장소로 왔다"며 "평범한 이유로, 평범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었다. 반복되는 비극을 이제는 그만 보고싶다는 바람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이날 2시께부터 참사 장소인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는 추모를 위해 찾아온 시민들로 북적거렸다. '추모의 벽' 앞에는 추모객들이 놓고 간 꽃과 간식들이 쌓였으며 메모지에 적힌 추모글도 가득했다. 오후 2시부터는 4대 종단 기도회로 추모대회 사전행사가 열렸다. 기도회 이후 유족과 참석자들은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용산 대통령실을 거쳐 시청광장까지 행진했다.
유족들은 이곳에서 오후 5시께 본 추모대회를 열고 참사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 후속 조치를 촉구할 예정이다. 대회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야당 지도부,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 등 정계 인사들도 참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