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 누명 쓴 소년들, 국가는 끝내 책임지지 않았다

[영화 '소년들']
'부러진 화살' 정지영 감독 신작
삼례 나라슈퍼 사건 모티브로
국가·사회의 가혹한 폭력 고발

영화 '소년들' 스틸컷. 사진 제공=CJ ENM

1999년의 어느날 밤, 전북 삼례의 한 슈퍼에 강도가 든다. 자고 있던 주인 할머니와 그의 딸을 청테이프로 결박하는 과정에서 할머니가 사망한다. 딸이 목격한 범인은 3명의 소년들. 경찰은 인근에 살던 소년들을 체포하고, 소년들은 범행을 자백한다. 모든 것이 해결된 듯 보이지만 완주경찰서 수사반장으로 새롭게 부임한 형사 ‘황준철(설경구 분)’은 석연치 않아 사건을 파고든다. 황준철과 소년들, 국가의 지난한 싸움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하얀 전쟁’ ‘부러진 화살’ ‘블랙머니’ 등 굵직한 사회 고발 영화를 연출한 정지영 감독이 신작 ‘소년들’로 돌아왔다. 데뷔 40주년을 맞아 1999년 실제 벌어진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토대로 17년 간 국가가 소년들에게 펼친 폭력의 실태를 파헤친다.



영화 '소년들' 스틸컷. 사진 제공=CJ ENM

영화는 삼례 나라슈퍼 사건의 큰 틀을 가져와 상상력을 덧붙였다. 살인범으로 몰려 옥살이를 했던 소년들은 실제 사건과는 무관한 사람들이었다. 빈곤하고 취약한 환경 속에 놓여있던 이들은 누명을 쓴다. 진범인 소년들이 잡히지만,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할 수 없던 수사당국은 의혹을 무마한다. 소년들을 검거한 수사계장(유준상 분)은 이 사건으로 특진했고, 담당 검사(조진웅 분) 또한 그와 한 패이기는 마찬가지다. 소년들이 범인으로 낙인 찍히는 과정 속에서는 국가의 가혹한 폭력이 난무한다.


소년들의 무죄를 주장하는 형사 황준철은 새롭게 창조된 캐릭터다. 영화는 사건이 벌어지고 1년 뒤인 2000년과 재심을 청구한 2016년을 오간다. 이를 통해 한번 문 것은 절대로 놓지 않던 ‘미친 개’ 황준철이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초라한 신세에 놓이게 되는 과정이 입체적으로 서술된다. ‘공공의 적(2002)’에서 형사 ‘강철중’을 맡아 대중의 뇌리에 ‘열혈 형사’ 이미지를 심었던 설경구는 이번 영화에서도 정의를 좇는 형사를 맡아 호연한다. 소년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속에서 노년의 황준철은 재심 소식에 대해 “이미 지난 일을 왜 들쑤시냐”며 무력한 모습을 보이지만, 여전히 그의 가슴 한 편에는 진실을 향한 열망이 숨어 있다. 정지영 감독은 캐스팅에 대해 “수사반장으로 주인공을 정하자 설경구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밝힌 바 있다.



영화 '소년들' 스틸컷. 사진 제공=CJ ENM

첫 단추부터 부조리하게 끼워 맞춰진 사건의 영향 속에서 소년들은 제댈 성장하지 못한다. 진범이었던 소년들도 죄책감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 연출은 이따금 이들을 중첩시키며 어린 나이에 당연히 누려야 했던 수많은 추억들을 상실한 소년들을 조명한다. 소년들은 재심에서 “우리는 살인범이 아니”라고 외치면서 누명을 벗고 비로소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이들의 청춘을 앗아간 대가로 처벌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진실을 호도하는 현실 속에서 어렵게 내민 이들의 용기를 우리 사회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123분. 다음달 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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