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 도킨스 과학철학 밑거름된 '50년 책읽기'

■리처드 도킨스, 내 인생의 책들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영사 펴냄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사진 제공=김영사

누구에게나 인생의 책들은 있다. 책은 삶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맞춰 우리가 돛을 펼쳐야 하는 방향을 제시한다. 이는 영국의 스타 진화생물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 ‘이기적 유전자(1976)’와 ‘만들어진 신(2006)’으로 대중에게 첨예한 논쟁 거리를 제시했던 리처드 도킨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그가 80세 생일을 맞이해 ‘내 인생의 책들’이라는 제목으로 50년의 과학 인생을 정리할 신간을 펴냈다.


저자는 본격적인 책 소개에 앞서 서문에서 ‘문학으로서의 과학’이라는 개념을 내놓는다. 보편적으로 문학과 과학은 은하를 사이에 둔 것처럼 머나먼 장르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는 “과학은 시적으로 들리기 위해 언어를 치장할 필요가 없다. 과학은 오직 명료하고 정직하게만 쓰면 독자에게 시(詩)적인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면서 과학이 딱딱하고 지루할 수밖에 없다는 세간의 인식을 부정한다. 문학성을 응집한 수많은 책은 저자가 생물학에 빠져드는 계기가 됐다고도 밝힌다. ‘둘리틀 박사’ ‘멋진 신세계’ 같은 이야기들이 어린 시절의 그에게 과학적 호기심을 불어넣은 까닭이다. 저자는 이번 책을 “책에 대한 사랑을 담은 책”이라고 요약한다.


각 장의 서두는 물리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 저널리스트 애덤 하트-데이비스,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등 세계적 석학과의 대화로 시작한다. 과학자의 종교적 믿음, 유전자의 의미, 인간의 감정 등 근원적인 물음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가 진행되며 지적 탐구의 장을 제공한다. 특히 닐 디그래스 타이슨과의 대담은 과학적인 사고와 생각하는 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책의 메시지를 강조한다. 저자도 “그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한 인터뷰 가운데 내 과학 인생을 가장 간결하게 요약한 인터뷰”라고 꼽았을 정도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사진 제공=김영사 ⓒJane Lenzova

그 뒤로는 저자가 책들에 대해 남겨온 다양한 서평이 이어진다. 서문과 에세이, 신문 서평의 형식으로 남긴 글들은 그 자체로도 놀라울 만큼 매혹적이다. 루이스 월퍼트의 ‘과학의 부자연스러운 본성’부터 제리 코인의 ‘왜 진화가 사실인가’에 이르기까지 날카로우면서도 유쾌한 문장들이 드넓은 과학의 세계를 파고 든다.


저자에게 우상 같은 칼 세이건에게는 “신임장을 들려 은하대사관에 파견할 지구대사 후보로 칼 세이건을 추천하고 싶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대니얼 갤루이 ‘암흑 우주’와 프레드 호일의 ‘검은 구름’을 추천하면서 과학 소설에 대한 애정도 드러낸다. 저자가 직접 진행한 강연도 함께 정리됐다. 1992년 영국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진행한 ‘인류, 환경, 그리고 신’ 강연에서 자연 신학에 대한 흥미진진한 그의 관점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책 ‘무지개를 풀며(1998)’에 쓰인 ‘내 장례식에 읽힐 추도사’를 통해 책을 마무리한다. “나는 운이 좋아서 태어났고 당신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우리는 특권을 누렸다. 우리 눈이 열리고 지금처럼 볼 수 있는지를, 그 눈이 영원히 감기기 전 짧은 시간 동안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받았기 때문에”라는 그의 말은 일평생 지성의 눈으로 과학을 살펴온 일생을 함축한다. 2만 8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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