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유출 피해액에 연구개발(R&D) 비용을 포함시켜야 합니다.”
“초범이라고 해서 기술 유출범의 형량을 줄여주는 것은 개선해야 합니다.”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기술 유출 범죄를 제대로 처벌하기 위해 양형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사기관과 정부 역시 상당수 기술 유출 범죄자들이 가벼운 형량을 받는 데 그치고 있어 이를 개선하기 위한 부처 간 공조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대검찰청과 특허청은 3일 국가정보원 후원으로 ‘기술 유출 피해액 산정 가치평가 도입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산업통상자원부·경찰청 등 유관 부처 관계자와 지식재산(IP) 가치평가기관 실무자 등도 참석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연구진이 해외 사례와 감경 요소 제한, IP 가치평가 모델 개발 등 연구 결과를 공유했다.
국정원이 적발한 산업 기술 해외 유출 사건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총 93건으로 기업 추산 피해액은 25조 원에 달한다. 특히 전체 사건의 3분의 1 수준인 33건이 국가 핵심 기술로 파악됐다.
하지만 대법원이 발표한 관련 사건 1심 처리 현황을 보면 2017~2021년 처리 사건 81건 중 무죄(28건·34.6%)와 집행유예(32건·39.5%) 비중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실형을 사는 경우는 5건(6.2%)에 불과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국내 법원은 “피해액 산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피해 기업이 수천억 원의 손실을 봤다고 해도 판결문에 ‘불상의 피해액’이라고 기재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 때문에 금액이 크면 가중처벌하는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죄가 아닌 일반 배임죄로 약하게 처벌되는 경우도 다수인 것이 현실이다.
발제자로 나선 윤해성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은 500만~1000만 달러(약 66억~132억 원)라는 절대적 기준과 함께 영업비밀 연구 단계에서 투자된 금액과 재생산 비용도 피해액 산정에 고려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며 “실질적 손해와 부당이득에 대한 손해, 합리적 사용료를 모두 감안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역시 업계에서의 시세와 해당 정보 자체의 가치, 매출 및 이익 기여도 등을 종합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 선임위원은 “우리나라도 미국과 같이 피해 기업의 전문가 증언을 토대로 기술의 가치를 평가하고 피해액에 따라 범죄 등급을 상향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우정 KAIST 교수도 발제를 통해 “기술 유출 범죄자는 화이트칼라 직업군으로 초범이면서 재범 가능성이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형사처벌 전력이 없거나 진지한 반성을 했다는 등의 이유로 감형하는 것을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실제 기술이 사용되지 않고 회수된 경우에 감경하는 것에 대해서도 “산업기술보호법 등의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좀 더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이종택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업계별로 맞춤형 지식재산권 가치평가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 제9기 양형위원회는 임기 내인 2025년 4월까지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정비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검과 특허청은 이번 세미나 내용 등을 포함해 대법원에 관련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