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급증한 은행 주택담보대출의 절반가량이 정부의 정책 모기지 상품을 은행이 대신 팔아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사업비가 조기 소진돼 이를 대신했을 뿐인데 오히려 은행들이 가계부채를 키운 주범으로 몰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서울경제신문이 입수한 디딤돌·버팀목대출 현황에 따르면 은행이 신규 취급한 대출액은 올 들어 9월까지 17조 2183억 원으로 집계됐다. 4월 3944억 원에서 5월 2조 1400억 원으로 급증한 뒤 6월 이후 줄곧 3조 원 이상을 기록했다. 이 상품은 주택도시기금이 재원이며 당해 사업비가 소진되면 시중은행이 이를 대신 집행한다. 정부가 이 상품을 다루면 가계대출 분류상 ‘정책 모기지’에 포함되지만 은행이 취급하면 ‘순수 은행 취급 주담대’로 분류 항목이 바뀌게 된다.
그런데 올해는 예년보다 훨씬 빠른 4월께 사업비가 바닥을 보였다. 이때부터 은행들이 정부 대신 해당 상품을 취급하기 시작했고 정책 모기지로 분류돼야 할 대출은 은행이 취급하는 주담대로 분류됐다. 실제로 올해 4월부터 9월까지 은행 주담대 증가분은 34조 4500억 원이며 이 가운데 디딤돌·버팀목대출의 신규 취급액은 15조 753억 원으로 비중이 43.8%에 달했다. 정부가 적정 규모의 사업비를 책정했다면 은행 몫의 주담대 증가액은 절반 가까이 줄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가계대출이 급증하자 ‘은행의 부적절한 여신 관행’ 때문이라며 책임을 은행으로 돌렸다. 하지만 은행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은행이 취급하는 디딤돌·버팀목대출은 사실상 정책 모기지”라며 “대개 11월에 소진되던 기금이 올해 4월께 고갈되면서 은행이 대신 집행한 몫이 크게 늘어났는데 은행이 가계부채를 키웠다고 지적받으니 당혹스럽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은행권으로 주담대 증가의 책임을 넘기며 비판에서 비켜섰다. 하지만 앞으로 정책 모기지와 시중금리의 차이를 감안한 차액을 ‘이자 장사’라며 비판했던 은행에 보전해줘야 할 일이 남았다. 국토교통부가 올해 디딤돌·버팀목대출을 포함한 주요 사업 이차보전액으로 책정한 돈은 1조 95억 원으로 전년(4982억 원)보다 갑절 이상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