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개월째 계속된 ‘엔저 현상’에 일본 여행을 가려는 수요까지 더해지며 엔화 모으기가 급증하고 있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 2일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엔화 예금은 총 1조 951억 엔(약 9조 6126억 원·환율 877.8원 기준)으로 집계됐다. 이는 10월 말의 1조 489억 엔(약 9조 2071억 원) 대비 약 462억 엔(약 4055억 원) 늘어난 수치다. 9월 말 대비 10월 한 달 동안 증가한 154억 엔(약 1348억 원)보다 3배 이상 많은 엔화가 단 이틀 동안 몰린 것이다.
엔화 예금은 원·엔 환율이 990원대까지 올랐던 올해 상반기 환차익을 실현하려는 수요가 많아지며 1월 7583억 엔, 2월 6767억 엔, 3월 6224억 엔, 4월 5978억 엔까지 줄었다. 하지만 올해 하반기 원·엔 환율이 910원대까지 떨어지면서 증가세로 전환했다. 5대 시중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올해 5월 7240억 엔, 6월 9373억 엔, 7월 9803억 엔, 8월 9951억 엔으로 증가했다가 9월 1조 335억 엔으로 1조 엔을 돌파했다. 10월에도 1조 489억 엔으로 증가했고 최근 원·엔 환율이 870원대까지 떨어지자 이달 2일 기준 1조 951억 엔으로 더 많아졌다. 3일 100엔당 엔화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12.9원 내린 879.93원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원·엔 환율이 870원대로 내려온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던 2008년 2월 2일(879.3원) 이후 15년 9개월여 만에 처음이다.
우대금리에 따라 최대 5%의 이자를 제공하는 달러 예금 등과 달리 엔화 예금은 금리가 0%이다 보니 이자 수익을 내기 어렵다. 하지만 원·엔 환율이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하자 환차익 실현을 목적으로 한 투자 수요가 많아졌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요즘 엔화 가격이 더 내려가면서 엔화를 미리 사두려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엔저 현상이 계속되면서 더 많아진 일본 여행 수요에 환전하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재 가격만 보고 투자 목적으로 엔화를 구매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최근 투자 메모를 통해 “향후 몇 달간 엔화가 큰 강세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