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사의 휴면 예금을 서민금융진흥원에 의무적으로 출연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올 상반기 금융사들이 서금원에 출연하지 않고 방치한 휴면 예금이 3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금융사 자율에 맡긴 현행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6일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은행·저축은행·상호금융 업권이 서금원에 출연하지 않고 자체 보유 중인 휴면 예금 규모는 총 2897억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이 1532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상호금융 1060억 원, 저축은행 305억 원 순이었다. 휴면 예금은 5년 넘게 찾아가지 않은 예금을 의미한다. 서금원은 서민금융법에 따라 개별 협약을 맺은 금융사로부터 휴면 예금을 출연받아 소멸시효 없이 ‘휴면예금찾아줌’ 서비스 등을 통해 찾아주거나 휴면 예금을 운영해 얻은 수익을 전통시장 소액 대출, 미소금융 등 정책서민금융상품 재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사들의 휴면 예금 출연이 의무가 아닌 자율인 탓에 적지 않은 규모의 휴면 예금이 금융사 금고에 잠들어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본은 민간 공익 활동 촉진을 위해 금융기관의 휴면 예금을 예금보험공사로 이관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국내는 그렇지 않다. 상호금융 업권의 경우 단 한 곳도 서금원과 출연 협약을 맺지 않았고 국내 저축은행 79곳 중 26곳 역시 휴면 예금을 출연하지 않고 있다. 은행은 협약을 맺고 있지만 1년에 한두 번 모아서 서금원에 출연하는 만큼 일부가 빠지더라도 외부에서는 알 수가 없다. 서금원이 올해 9월 말까지 주인에게 돌려준 휴면 예금은 2165억 원(67만 2264건)가량인데 이보다 1000억 원 가까이 많은 휴면 예금이 여전히 금융사 내부에 방치돼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더 나아가 금융회사들이 고객의 잠든 돈으로 사회 공헌 ‘생색’을 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들의 사회 공헌 규모는 1조 2380억 원으로 이 중 약 4분의 1은 휴면 예금 출연금(3320억 원)이 차지했다. 휴면 예금 출연이 ‘자율’이라는 점을 근거로 출연금을 서민금융지원금, 즉 사회 공헌 실적으로 분류한 것이다. 관련해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올 4월 “휴면 예금, 장애인 고용 부담금 등 사회 공헌을 제대로 측정하지 않거나 사회 공헌 취지와 맞지 않는 항목들을 (사회 공헌 실적에) 포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정치권에서는 금융회사의 휴면 예금 출연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서민금융법 개정안 발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 발의를 맡은 김 의원은 “휴면 예금이 수천억 원에 달하는 상호금융권은 협약을 체결한 사례가 전무하다”며 “휴면 예금 출연을 의무화하면 관련 제도를 실효성 있게 운영하고 서민·취약 계층에 대한 정책서민금융 지원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도 “휴면성 자산 출연이 확대되면 정책서민금융상품 집행을 위한 서금원 예산 확보 등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