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가 지정학적 힘과 군사력의 지렛대로 활용되면서 미국과 중국이 자국의 반도체 산업 자립을 위한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 정부는 국방 분야에 활용되는 군사용 반도체 생산설비를 인텔의 애리조나 공장에 설립하고 5조 원 이상의 지원금을 인텔에 지원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對)중국 반도체 기술 수출제한 등 미국의 규제를 받고 있는 중국은 신생 메모리칩 회사에 7조 원을 투입하며 기술 자립에 나서는 모습이다.
◇“반도체 수입 의존도 낮추자” 美, 반도체 지원법 예산으로 인텔 지원
미국 정부는 반도체 지원법(CHIPS Act) 예산 중 일부를 군사용 반도체 생산설비 구축에 사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설비 부지와 지원금 규모는 공개적으로 발표되지 않았지만 WSJ는 소식통을 인용해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인텔의 애리조나 공장 단지에 최대 40억 달러(약 5조 2000억 원)를 들여 국방용 반도체 생산시설을 짓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미국은 반도체지원법을 통과시키며 글로벌 기업들의 미국 내 투자를 유인해왔지만 실상은 해당 예산으로 자국 기업을 지원해 대만 등 동아시아 지역의 반도체 의존도를 낮추고 자급 체제를 구축하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WSJ는 “첨단 군사용 반도체 칩은 인공지능(AI), 스파이 활동 등 사이버 전쟁을 비롯해 미사일과 전투기 제조 과정에도 필수적”이라며 “정부의 국방용 반도체 설비 구축 계획은 군사력에 필요한 반도체 칩 확보에 관여하려는 백악관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올해 초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반도체지원법과 관련해 “국내 반도체 칩 공급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 국가 안보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다만 인텔의 경쟁사들과 상원의원 일부는 정부가 인텔과 같은 한 기업에 막대한 지원금을 투자하는 것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WSJ에 따르면 세 명의 상원의원은 러몬도 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한 기업에 단독으로 지원금을 몰아주고 국방 시설을 맡기면 방위산업 기반을 조성하는 다른 기업에 대한 투자가 제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생 메모리칩 회사에 7조 투자하는 중국
중국 정부는 미국의 규제에 역량 강화로 맞대응하며 반도체 기술 자립에 팔을 걷어붙였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2021년 문을 연 신생 메모리 칩 회사인 ‘창신신차오메모리테크놀로지’에 7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중국 정부의 대표적 반도체 투자 펀드인 ‘대기금(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과 안후이성 중부 허페이시 정부와 연계된 투자자들이 자금을 댔으며 펀드 책임자들이 부패에 연루돼 주춤했던 대기금의 투자는 올해 들어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중국 정부의 창신신차오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중국이 반도체 기술 자립을 이루고 자국을 겨냥한 미국의 제재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창신신차오는 신생 기업이지만 중국 주요 D램 반도체 업체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와 일부 주주를 공유하고 있다. CXMT는 마이크론과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을 목표로 상장을 추진하고 있으며 지난해 10월 미국의 수출통제 대상에 오른 기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