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히고 설킨 원·하청 현실 그대로…노란봉투법, 제대로 작동할 수 있나

노란봉투법 기폭제였던 대우조선 하청 파업
원·하청 교섭구조에 열악한 하청근로 ‘트리거’
노란봉투법 시행 시 하청 교섭·파업 되풀이
교섭 사안 임금서 직고용으로 확장 불가피

작년 6월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가 대우조선해양 1도크를 점거 농성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작년 6월 51일간 이어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하청노동조합 파업은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2~3조(노란봉투법)의 기폭제인 동시에 노란봉투법 시행 후의 ‘미래’다. 이 파업은 시작부터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이 나서 임금 등을 결정하는 단체교섭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란봉투법이 담은 원청의 하청 노조와 교섭과 닿은 주장이다. 현행 법은 원청이 직접적 고용 계약이 없는 하청과 교섭 의무가 없다고 정했다. 현재 원·하청 교섭의 룰이다. 하지만 작년부터 원청의 실질직인 사용자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해석과 법원 판단이 늘었다. 중앙노동위원회가 전국택배노동조합이 요구한 CJ대한통운과 교섭 의무를 인정한 판정이 대표적이다. 이후 노란봉투법 요구가 거세졌다.


근본적으로 하청 근로자의 상황이 너무 열악하다는 점이 파업의 트리거였다. 당시 현장 하청 근로자들은 월 200만원을 받고 일한다며 처우 개선을 촉구했다. 월 200만원(연 2400만원)은 원청인 대우조선해양 평균 직원 연봉 6700만원 대비 약 40%에 불과하다. 파업이 일어난 조선업의 경우 장기간 불황 탓에 하청의 저임금 구조가 고착화됐다. 조선업 하청업체 숙련공은 2015년 대비 절반 이하로 준 결과를 낳았다. 이 인력난은 다시 하청 경영을 악화시켰다. 하청 노조의 ‘선택지’는 파업이었다.


9일 국회 본회의 처리가 예고된 노란봉투법은 하청 근로자가 원청 업체(사측)에 단체교섭 방식으로 처우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일종의 근거법이다. 노동계는 이 과정이 안착된다면 대우조선해양 파업처럼 하청 노조가 벌인 파업 원인이 근본적으로 줄 수 있다고 기대한다. 반면 경영계는 원청이 수많은 하청업체를 통해 경영을 하는 우리 산업 구조에서 당장 교섭 요구와 교섭 결렬로 인한 파업이 쏟아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날 국회에 따르면 노란봉투법은 크게 사용자 및 노동쟁의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2조)와 손해배상책임 제한하는 방향(3조)로 구분할 수 있다. 3조는 국회 논의 과정에서 다소 약해졌다. 노란봉투법 발의안 중 폭력, 파괴와 같은 파업 시 직접 손해만 기업이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는 방향의 안은 최종안에서 빠졌다. 하지만 파업 손해 책임을 기업이 따져야 하기 때문에 이전 보다 파업권이 강화될 수 있다.




작년 7월 22일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협력사 대표인 권수오 녹산기업 대표(왼쪽)와 홍지욱 금속노조 부위원장이 협상 타결 후 손을 맞잡고 있다. 연합뉴스

쟁점은 2조다. 사용자의 범위를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에서 실질적 지위로 넓혔다. 경우에 따라서는 하청 근로자의 사용자가 원청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상황이다. 이 해석을 확장하면 하청 노조가 원청과 교섭을 요구할 수도 있다. 하청 노조와 원청이 임금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는 의미다. 노동계에서는 하청 근로자 지위가 교섭을 통해 향상되면 그만큼 파업으로 갈 유인이 줄어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동계가 기대하는대로 하청 파업이 줄 가능성은 미지수다. 파업은 정당한 절차를 거치면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 3권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원·하청 구조는 파업을 유발하는 측면이 있다. 하청은 원청에 비해 규모가 작고 경영 상황이 나빠 같은 일을 하더라도 임금이 원청 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 늘 임금 교섭의 끝이 파국을 맞아 파업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전 산업의 문제다. 한국은 노조 조직률은 20%도 안되는데 노조 사업장은 대부분 대기업과 공공부문에 몰려있다. 대부분 비노조 사업장인 중소기업은 임금을 올리기 어려워 대기업과 임금 격차가 점점 벌어진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대기업의 1인당 월 임금을 100%로 놓고 중소기업 월 임금과 비교한 결과 1999년에는 비율이 71.7%였는데 2019년에는 59.4%로 급감했다.


그동안 하청 노조 파업 양상이 불법파견과 맞닿아 있다는 점도 눈여겨 봐야 한다. 불법파견은 제조 대기업이 만든 사내하청이 불법인지 여부를 가리는 게 핵심이다. 노동계는 사내하청 형태로 간접 고용한 근로자(파견업체 고용)를 직접 고용한 근로자처럼 일을 시켜 노동 착취를 해왔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사내하청의 근로조건은 대기업 직접 고용 근로자 보다 열악하다. 불법파견으로 인정된 근로자는 직접 고용 대상이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 파업도 같은 맥락이다.



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손해배상 20년, 하청 20년, 죽음 내몰린 20년 특별사진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때문에 2010년 대법원의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인정 판결 이후 여러 대기업에서 불법파견 소송이 줄지어 이뤄졌다. 소송 기업은 현대차, 기아, 금호타이어, 한국지엠, 포스코, 현대제철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이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불법파견 소송 계류자가 6379명(19개 지회 소속)이다. 이 중 대법원 계류자는 766명(11개 지회)이다.


불법파견 소송이 노란봉투법과 이어지는 ‘고리’는 노조가 불법 파견을 주장하는 과정에 있었다. 상당수 비정규직 근로자(사내하청 지회)는 원청(사측)을 상대로 불법파견을 인정하라며 소송과 집회·파업을 해왔다. 원청은 하청 근로자가 원청을 상대로 한 파업이 현행 법상 불법이라고 보고 손해배상 소송으로 대응해왔다. 노동계가 파업에 따른 손배소를 제한하고 원청의 하청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성을 넓히는 노란봉투법을 촉구했던 근본적인 배경이다. 노동계가 노란봉투법의 정당성을 입증했다고 평가했던 6월 대법원의 현대차 판결도 불법파견과 연관 있다.


문제는 불법파견 판단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불법파견은 도급 관계를 파견 관계로 오인하거나 악용할 때 일어난다. 원칙적으로는 도급은 원청이 하청 근로자에게 직접 지휘나 명령을 할 수 없다. 반면 파견은 사용사업주(원청)가 파견근로자에게 지휘와 명령을 할 수 있다. 단, 제조업의 직접 생산 공정에는 파견이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제조 대기업에서 불법파견 소송이 누적된 이유다. 대법원이 공정 성격부터 과정별 지시 여부, 방법 등을 얼마나 정확하게 볼지 의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영계는 노란봉투법이 입법 되면 규모가 큰 기업의 경우 수십·수백 개에 이르는 하청업체 노조들과 교섭을 요구 받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교섭 대상이 늘어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임금은 지금도 노사 간 상수와 같은 갈등이다. 하청 근로자 직고용처럼 사업장 마다 임금 보다 더 큰 사안들이 원·하청 협상 테이블로 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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