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제조·판매업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하급심에서 진행 중인 관련 소송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9일 김 모 씨가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업체인 옥시레킷벤키저와 납품 업체 한빛화학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 씨는 2007년 11월부터 2011년 4월까지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해 가습기를 세정했다. 이후 그는 2010년 5월 간질성 폐질환 등의 진단을 받고 입원과 통원 치료를 받아왔다. 원인이 불분명한 가운데 2014년 3월 질병관리본부는 김 씨에게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질환 가능성이 낮다며 3단계(가능성 낮음) 판정을 내렸다.
김 씨는 2015년 2월 옥시와 한빛화학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김 씨의 청구를 기각한 반면 2심은 “피고들이 제조·판매한 이 사건 가습기 살균제에는 설계상 및 표시상의 결함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원고가 신체에 손상을 입었다”며 위자료 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진료소견서와 옥시 관계자들이 형사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점 등이 항소심 재판부 판단에 근거가 됐다. 항소심 재판 중이던 2017년 10월 김 씨가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에 따라 구제 급여 지원 대상자로 인정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번 사건은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가 제조·판매업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민사소송 중 첫 대법원 판결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7월 기준으로 총 5041명이다. 앞서 신현우 전 옥시 대표는 안전성을 검증하지 않고 제품을 제조·판매해 피해를 입힌 혐의(업무상 과실치사 등)가 인정돼 2018년 1월 대법원에서 징역 6년을 확정받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3단계 판정을 받은 질병관리본부 조사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말단기관지 부위 중심 폐질환 가능성을 판정한 것일 뿐”이라며 “손해배상 소송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용과 그로 인한 질환의 발생·악화에 관한 인과 관계 유무 판단은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의 구체적인 증명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