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제약회사 일라이일리가 만든 체중조절 약품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덴마크 제약회사 노보노디스크가 독주하던 미국 비만치료제 시장에서 또 다른 제품이 등장하면서 시장의 성장과 경쟁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8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FDA는 이날 일라이릴리가 만든 체중조절용 약품 젭바운드(Zepbound)를 비만치료제로 승인했다. FDA는 “임상실험 결과 젭바운드를 최고 용량으로 투여 받은 환자들의 체중이 평균 18% 감소했다”고 밝혔다.
젭바운드는 일라이릴리가 앞서 당뇨병 치료제로 FDA의 승인을 받은 모운자로와 같은 성분의 약물로 체중 조절 목적에 맞게 함량을 달리한 제품이다. 일라이릴리는 모운자로가 체중 조절에도 효과가 있다는 점에 착안해 주원료의 함량을 달리해 FDA에 허가를 신청했다. 일라이릴리는 이번 승인을 계기로 이달 하순 추수감사절 이후 미국에서 젭바운드를 출시할 예정이다.
젭바운드의 FDA 승인으로 비만 치료제 시장의 성장세는 더욱 빨라지게 됐다. 그동안 미국에서 비만치료제로 FDA의 허가를 받은 약물은 삭센다와 위고비 두 종류가 전부였으며 이는 모두 덴마크의 제약사 노보노디스크의 제품이다. 2021년 위고비의 미국 시판 이후 인기가 급등하면서 현재는 공급부족을 겪고 있다. 노보노디스크는 지난 2일 3분기 위고비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34%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일라이릴리는 한달치 젭바운드 가격을 1060달러(약 139만원)로 설정했다. 이는 기존 자사 당뇨병 치료제인 모운자로의 1020달러와 비슷하며 경쟁약인 위고비의 1350달러보다 약 20% 낮은 가격이다. 다만 일라이릴리는 민간 보험이 있는 특정 환자들에 대한 가격할인 프로그램 등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설명햇다. 데이비드 릭스 일라이릴리 최고경영자는 “우리는 연말에 크고 대담한 출시를 준비하고 있으며, 비만인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공급 능력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캐나다 기반 글로벌 투자은행(IB)인 BMO캐피털마켓은 2030년 세계 체중감량약품 시장을 1000억 달러(약 131조원) 규모로 추산했다. 비아그라 등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 규모의 약 18배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마켓유에스(Market.US)에 따르면 2030년 세계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은 53억 달러(약 7조원)다. 월가에서는 체중 조절 약품의 파급력이 당뇨와 체중관리 시장 외에도 과자업체 등 식음료 업계나 월마트나 타겟같은 대형마트, 나아가 항공업계까지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뉴욕 기반 IB 제프리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체중조절 시장이 확대될 경우 항공사들의 영업이익이 개선될 수 있다고 봤다. 승객들의 평균 몸무게가 줄어 운항 연료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연료비는 항공사 전체 비용 중 약 25%를 차지한다. 항공사들이 기내에서 잡지나 책자를 없애고 경량 카트나 좌석을 도입하는 것과 같은 효과라는 것이다.
제프리스에서 항공우주 분야를 담당하는 쉴라 카하오글루 애널리스트는 “유나이티드항공을 기준으로 보면 승객의 평균 몸무게가 10파운드(약 4.54㎏) 줄어들면 항공편당 무게가 1790파운드(812㎏) 줄어 연간 2750만 갤런의 연료가 절약될 것”이라며 “2023년 평균 연료가격을 적용하면 유나이티드는 연간 8000만 달러(1046억원)를 절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위고비와 젭바운드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와 포도당 의존성 인슐린 분비 촉진 폴리펩타이드(GIP)’라는 호르몬에 작용해 식욕을 억제하고 혈당을 조절하는 작용을 한다. 위고비와 젭바운드 모두 주사제 형태다. 메스꺼움과 구토, 장질환 등의 부작용이 있으며 일부 우울함이나 자살 충동 가능성도 보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