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기습적으로 공매도를 전격 금지했습니다. 정책을 결정한 이유 만큼이나 그 시점도 오묘한데요. 하필 총선 정국 돌입을 앞둔 이달 6일부터 선거 직후인 내년 6월 말까지로 잡았습니다. 공매도 금지에 그간 반대 입장을 취했던 금융 당국까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돌아선 점도 특이 사항입니다. 당국 수장들은 입을 모아 “불법 공매도에 따른 시장 교란을 막겠다는 취지일뿐 정치적 목적은 없다”고 강조하는데요. 시장 참여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여전히 ‘김포의 서울 편입’에 이은 여당의 총선용 정책 2탄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공매도 금지 이후 다수의 외국인은 물량을 털고 일찌감치 자리를 뜨는 분위기인데요. 개인투자자들은 과연 공매도 금지로 총선 전까지 돈을 벌 수 있을까요. 설사 주가가 오르더라도 그 만족감만으로 국민의힘에 의석을 몰아 줄까요. 그렇게 나쁜 제도인데 왜 ‘폐지’나 ‘무기한 금지’를 하지 않고 ‘한시적 금지’만 할까요. 공매도 금지는 정말 표가 되는 정책인지 선데이 머니카페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5일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정부서울청사에서 돌연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고 공매도 한시적 금지라는 임시 금융위 회의 의결 사안을 발표했습니다. 공매도 전면 금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 2020년 코로나19 위기에 이어 역대 네 번째입니다. 당국은 공매도 금지 기간을 이달 6일부터 내년 6월 30일까지로 정했는데 재개 시점은 시장 동향 등을 고려하기로 해 추가 연장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당국은 아울러 △기관·개인 간 불평등한 거래 여건 해소 방안 마련 △무차입 공매도 사전 방지책 모색 △글로벌 투자은행(IB) 무차입 공매도 전수조사 등도 추진한다고 거듭 설명했습니다.
당국의 공매도 전면 금지 발표는 시장이 당초 예상했던 이달 중순보다 1주일가량 앞당겨 급히 나온 정책이었습니다. 대통령실은 공매도 전면 금지가 발표된 후 “윤석열 대통령은 자본시장 내 불법 공매도와 공매도를 이용한 시장 교란 행위는 반드시 뿌리 뽑겠다는 각오”라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정치권과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유권자들의 총선 표심을 흡수할 만한 대형 정책이 필요하다는 여당 측의 압박을 당국이 받아들인 결과로 해석했습니다. 최근 약세장에서 1400만 개인투자자의 대다수가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에 반감을 표시하는 만큼 이를 막을 경우 여권에 유리한 여론이 조성될 수 있다고 계산한 게 아니냐는 인식이었습니다.
업계에서는 특히 거래소가 아니라 ‘금감원이’ 지난달 BNP파리바·HSBC 등 글로벌 IB 2곳의 560억 원대 불법 공매도 의혹을 적발한 사건으로 공매도 금지에 결정적 근거를 만들어 줬다고 추정했습니다. 애초 금융위원회는 주가조작 악용과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 편입 장애, 외국인투자가 이탈 등이 우려된다며 공매도 금지에 반대 입장을 취해왔기 때문이죠. 자본시장법 제180조 제3항은 증권 시장의 안정성, 공정한 가격 형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거래소의 요청’에 따라 금융위가 매매거래의 유형·기한 등을 정해 공매도를 제한할 수 있게 합니다.
업계와 정치권에서는 당국의 이번 조치를 두고 “총선 승리만을 겨냥한 다분히 포퓰리즘적인 정책”이라는 평가가 쏟아졌습니다. 개인투자자 중 일부의 표심을 얻을지는 몰라도 ‘증시 안정’과 ‘경제성장’이라는 핵심 국정과제를 달성하는 데는 역효과가 더 클 수 있다는 이유에서죠. 상당수 투자 전문가들은 특히 한시적 공매도 금지가 외국인 헤지(위험 분산) 수요를 차단해 증시 이탈을 초래하고 가뜩이나 불안정한 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무엇보다 공매도 제도가 기관·외국인에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제공한다는 20~30대 청년층의 비판 여론을 감안했다는 평가가 곳곳에서 나왔습니다. 이달 초 한 개인투자자가 공매도 제도 개선과 관련해 국회에 제출한 국민 동의 청원서에는 5만 명 이상이 찬성을 표하기도 했는데요. 공매도 금지가 표심과 직결된다는 인식은 일찌감치부터 야권에도 있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지난해 6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한시적 공매도 금지로 개인투자자들이 숨 쉴 공간이라도 열자”고 제안한 바 있고요.
증권 업계에서는 내년 6월 MSCI 선진지수 편입을 사실상 포기한 셈이라고 한탄했습니다. 가뜩이나 국내외 금융 시장이 불안해 거래대금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외국인 투자금까지 감소하면 증시 불안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걱정인데요. 고금리 장기화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등으로 증시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경우 환율 흐름까지 불안정해져 실물경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습니다.
일각에서는 최근 당국이 근절에 전력을 기울이는 주가조작 사태가 더 빈번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내놓았습니다. 올 들어 주가조작 의혹으로 하한가를 맞은 종목 15개 중 12개가 외국인·기관 접근성이 떨어져 주가를 쉽게 올릴 수 있는 공매도 금지 대상이었거든요.
공매도 금지에 따른 시장 충격은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컸습니다. 특히 첫날에는 코스피지수가 하루 만에 역대 최대인 130포인트 넘게 뛰면서 단숨에 2500선으로 올라섰는데요. 외국인투자가들이 공매도 청산을 위해 ‘쇼트커버링(공매도한 주식을 되갚기 위한 매수)’에 나서면서 국내 주식을 1조 원 넘게 사들인 영향이었죠. 이날 기록한 134.03포인트의 상승 폭은 사상 최대였고요. 100포인트 넘게 오른 것도 2021년 2월 25일(104.71포인트)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상승률 역시 2020년 3월 24일(8.60%) 이후 3년 7개월여 만에 최고였고요.
코스닥지수도 57.40포인트 급등해 ‘IT 버블’이 있던 2001년 1월 22일(61.10포인트) 이후 22년 만에 최대 폭으로 올랐습니다. 상승률 또한 2020년 3월 24일(8.26%) 이후 43개월여 만에 가장 높았고요. 거래소는 코스닥150 선물이 6% 이상, 코스닥150 지수가 3% 이상 오른 상태가 1분 이상 지속되자 3년 5개월 만에 역대 30번째로 코스닥시장에 사이드카(프로그램 매수 호가 효력 정지)를 발동하기도 했습니다.
다음 날인 7일에는 외국인들이 본격적으로 한국 증시에 등을 돌리면서 코스피지수가 폭등 하루 만에 2% 넘게 급락했는데요. 이날 코스피는 1.04% 내린 채 출발해 낙폭을 키우다 장중 한때 3.34%까지 밀리며 장중 롤러코스터를 탔습니다. 코스닥지수도 1.80% 떨어져 이달 들어 처음 하락세를 보였고요. 전날 두자릿수 상승률을 보였던 2차전지주도 단 하루 만에 일제히 급락했습니다. 거래소가 코스닥시장에 매수 사이드카를 발동한 이튿날 매도 사이드카를 발동하는 촌극도 벌어졌고요. 10일에는 코스피가 장중 2300대로 떨어지고 코스닥이 700대로 마감하는 등 사실상 3일 수준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공매도 금지 효과가 완전히 증발한 셈이죠.
이런 상황에서 이 원장은 6일 “공매도 시장은 유리가 다 깨져 있을 정도로 불법이 보편화돼 있는 장”이라며 “개인투자자 보호를 위해서일 뿐 총선용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김 위원장도 7일 “공매도(금지)가 요인 중 하나가 될 수 있지만 이것 때문이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법적 요건이 안됐는데 정치용으로, 여론 무마용으로 할 수 있는 조치는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공매도 금지가 총선을 앞둔 포퓰리즘 정책이 아니냐’는 지적에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시기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며 여론을 다소 의식한 듯한 발언도 덧붙였습니다.
투자 전문가들은 정부의 공매도 금지가 총선까지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 지는 미지수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애초에 당국이 정치권에 반대 입장을 취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였겠죠. 당장 주가지수가 하루 만에 제자리로 돌아갈 조짐을 보이는 것만 봐도 내년 총선 정국까지는 증시 불확실성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물론 직전에 공매도를 금지했던 2020~2021년 코스피지수가 3000포인트를 돌파한 경험도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경우 총선 때 정부 여당을 지지할 사람들이 일부 늘어날 수는 있겠습니다.
문제는 주가가 설령 오르더라도 내년 총선 시점까지 정부 여당에 표를 던질 정도로 고마움을 기억하는 유권자가 얼마나 있겠느냐는 점입니다. 인터넷 공간에 글을 남기거나 국회의원들에게 문자 폭탄을 보내고 서울 여의도에서 시위를 하는 등 정치권이 공매도 금지를 서두르는 데 영향을 준 강성 투자자들은 1400만 개인투자자 가운데 극히 일부라는 게 업계의 중론입니다. 더욱이 내년 4월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온갖 구설·사건·사고가 난무할 게 뻔한데 5개월 전 공매도 금지 조치를 사람들이 얼마나 회자할 지도 의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지금은 코로나19 당시와 달리 경제 전반의 펀더멘털(기초 체력) 자체가 너무 안 좋아 공매도만 막는다고 증시 상승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2020~2021년 당시에는 각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풀면서 국내외 금리가 바닥을 치는 상황이었습니다. 시장에 유동성이 넘쳐났다는 얘기죠. 현재는 고금리 장기화 국면인 데다 국내외 기업 실적도 영 시원찮은 판국입니다. 중동을 비롯한 국제 정세도 곳곳이 불안하고요. 글로벌 긴축 기조가 적어도 내년 4월 총선까지는 이어질 공산이 큰 상황입니다. 증시 거래대금도 공매도 금지 이후 이미 급감하는 형국이고요. 외국인에 이어 시장 조성자, 유동성 공급자의 공매도까지 막는다고 주가가 바로 상승 곡선을 그리기는 어려운 국면이라는 뜻입니다.
남의 돈을 굴리는 외국인·기관은 내 돈만 넣는 개인과 달리 헤지 수단 없이 매수 주문만 내지는 않습니다. 다른 나라에는 버젓이 공매도 제도가 있는데 우리만 제도를 없애면 증시 큰 손들이 굳이 한국 증시에 남아 있을 이유가 있을까요. 당국이 불법 공매도는 당연히 근절하되 유동성 부족으로 인한 변동성 확대에 대해서도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공매도 전면 금지로 인해 시장이 아래 위로 널을 뛰고 있는데 현재는 ‘물이 들어오는 장’이 아니라 ‘물이 빠져나가는 장’”이라며 “이는 2020~2021년 공매도 금지 당시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어 “당시는 고객 예탁금이 30조 원에서 80조 원까지 급증하던 시기여서 공매도까지 금지하니 매수 전력이 우수한 성과를 보인 것”이라며 “지금은 금리가 너무 높다보니 시중 자금을 은행 예금과 채권 시장이 빨아들이는 상황이라 공매도 금지 효과가 단발성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