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시장은 신뢰를 먹고 자란다

김현상 경제부 차장

“(우리는) 외국인 투자가 중요한 나라인데 외국에서 아무도 안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거래를 어렵게 하는 게 과연 개인투자자를 보호하는 정책인지 모르겠습니다.”


지난달 11일 국정감사에 출석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공매도 개선 주장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불법 공매도 방지를 위한 전산 시스템 구축 가능성에 대한 질의에 그는 “기술적으로 강제할 방법이 없다”며 사실상 공매도 규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현실적으로 시스템 개발이 어려울뿐더러 설령 시스템을 만들어 외국인들의 거래가 까다로워지면 국내 주식시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이달 5일 다시 마이크 앞에 선 김 위원장은 공매도 금지를 전격 발표했다. ‘기관투자가들의 관행적인 불법행위를 그대로 놓아두고는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신뢰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정부의 갑작스러운 발표에 금융시장은 요동쳤다. 공매도 금지 첫날인 6일 외국인들이 공매도한 주식을 되갚기 위한 ‘쇼트커버링’에 나서면서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급등했다. 하지만 다음 날 순매도로 돌아선 외국인들이 지수를 끌어내리며 공매도 금지 효과는 ‘일일 천하’로 끝났다. 코스닥시장에서는 2001년 ‘사이드카’ 도입 이후 처음으로 매수 사이드카와 매도 사이드카가 이틀 연속 발동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공매도 효용성을 둘러싼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당국의 ‘오락가락’ 정책 결정에 한국 금융시장은 신뢰도 훼손이 불가피해졌다. 당장 세계적인 투자가 짐 로저스는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맹비난했고 로이터통신은 한국 증시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지수 편입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 당국은 예정에 없던 깜짝 발표를 하면서도 공매도 금지의 근거로 삼은 일부 불법행위가 증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와 같은 구체적 데이터는 제시하지 않았다. 공매도 금지 기간을 6개월로 정한 것도 내년 4월 총선을 겨냥한 정치적 노림수라는 의구심을 키우는 대목이다.


최근 가계부채 대책을 둘러싼 당국의 ‘갈지(之)자’ 행보도 시장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떠오른 가계부채 문제 해소를 위해 대출 억제를 주문하다가도 돌연 서민과 상생을 앞세워 시중은행에 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금융권에서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푸념이 나오는 이유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1995년 저서 ‘트러스트’에서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신뢰 자본’에서 비롯된다”며 한국을 ‘저(低)신뢰 사회’로 규정했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 당국의 오락가락 행정을 지켜보면서 과연 대한민국은 저신뢰 사회에서 탈피했을지 되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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