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국회가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앞서 여당의 본회의 필리버스터 철회 결정으로 허를 찔린 더불어민주당이 ‘탄핵안 및 국정조사’ 카드로 반전을 벼르자 여당은 법적 대응 등 수단을 총동원해 ‘야당 폭거’를 저지하겠다고 나섰다. 여야의 관계 경색 심화 조짐에 ‘예산안의 법정 기한(12월 2일) 내 처리가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벌써 나온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12일 민주당의 탄핵안 재추진 계획을 두고 “민주당식 나쁜 정치의 꼼수가 끝이 없다”고 질타했다. 그는 공영방송 정상화 지연, 이재명 대표 수사 검사에 대한 보복 등 정략적 의도가 다분하다며 “‘방탄 국회’의 오명을 벗기도 전에 ‘방탄 탄핵’까지 밀어붙이는 민주당의 오만함에 대한 민심 심판의 날이 머지않았다”고 했다. 이달 10일 이 방송통신위원장 및 손준성·이정섭 검사에 대한 탄핵안을 철회한 민주당이 30일 본회의에 탄핵안을 재보고하고 다음 달 1일 통과시키겠다는 계획이다.
국민의힘은 ‘의원들의 동의권이 침해됐다’며 13일 헌법재판소에 권항쟁의심판, 가처분 신청을 동시에 청구하겠다는 방침이다. 본회의 보고 뒤 72시간이 경과된 탄핵안은 사실상 ‘부결’된 것이며 일사부재의 원칙에 따라 정기국회(12월 9일) 기간 내 재상정할 수 없다는 게 여당의 입장이다. 이에 민주당은 “억지 주장으로 상황을 호도하지 말라”고 반박했다. 탄핵안은 본회의에 보고된 것일 뿐 정식 의제로 채택된 것은 아니기에 철회·재추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조정식 민주당 사무총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국회사무처도 일사부재의 원칙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며 “언론 무차별 압수 수색 등 정권의 폭압을 막기 위해 이 위원장 탄핵과 ‘방송 장악’ 국정조사를 반드시 관철하겠다”고 강조했다.
여야의 이런 결사 항전 태세는 연말 국회를 정쟁의 장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크다. 여당이 법적 대응에 나섰지만 법원이 실효성을 있는 판단을 내릴지 미지수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의석 수를 앞세워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노란봉투법 등 입법 강행을 할 때마다 사법부에 심판을 맡겼지만 법원은 '타 기관의 개입은 가급적 자제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국회 절차를 존중하는 모양새를 취해왔다.
국회가 ‘탄핵 블랙홀’에 빠지면서 예산안의 처리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14일부터 소위원회 가동에 들어가 예산안 감액 및 증액 심사를 벌이고 법률상 처리 시한인 12월 2일까지 예산을 처리하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탄핵안을 둘러싼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 예산안 협상은 더욱 꼬일 수밖에 없다. 예산안 자체의 쟁점도 적지 않다. 여당은 정부의 예산안에 큰 틀에서 동조하지만 민주당은 감사원 등 권력기관 중심으로 최소 5조 원대 규모로 깎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민주당에 탄핵소추는 화나면 마구 던지는 돌팔매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조 사무총장은 한 술 더 떠 국정조사까지 관철하겠다는 만용을 부린다”며 “예산마저 내팽개치고 죽자고 달려드는 꼴”이라고 덧붙였다.
야권 일각에서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대한 탄핵 주장도 거듭 제기되고 있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9일 자신의 출판 기념회에서 “건방진 놈”이라며 한 장관의 탄핵을 요구했다. 한 장관은 전일 입장문을 내고 “추잡한 추문에도 마치 자기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한 척하며 국민들을 가르치려 든다”고 직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