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서 버려지는 에너지 양분 삼아…파프리카 '쑥쑥'

■ '건물일체형 옥상온실' 가보니
분산발전 통해 탄소배출 30%↓
사무실서 발생한 물·CO2 공급도
기계연, 국내 최초로 실증 성공

한국기계연구원 등이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오피스빌딩 옥상에 구축한 건물 일체형 옥상온실. 건물의 열과 이산화탄소를 공급받으며 식물이 자라고 있다.

“2개월 뒤엔 이곳에 파프리카 열매가 열려서 직접 따서 드실 수도 있어요.”


14일 찾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8층짜리 오피스빌딩 옥상에는 트리벨리파프리카가 한창 자라고 있었다. 200㎡(약 60평) 면적의 옥상 온실에 길게 늘어선 8개의 화단에 격자 모양으로 빼곡하게 심겨진 128그루의 식물은 노지(露地)에서와 다름없는 싱싱한 모습이었다. 이곳은 한국기계연구원을 비롯 건축공간연구원·한국건설기술연구원·성동구 등이 손잡고 국내 최초로 실증에 성공한 ‘건물 일체형 옥상온실’이다. 건물에서 버려지는 열을 알뜰히 끌어다 써서인지 한창 쌀쌀해진 바깥날씨에도 불구하고 온실 안은 후덥지근했다.



건물 일체형 옥상온실은 다중 분산발전 시스템을 적용해 에너지를 20% 적게 소비한다.

이상민 기계연 무탄소연료발전연구실 책임연구원은 “다중 분산발전 시스템이 적용된 세계 최초의 건물 옥상온실”이라며 “건물과 온실을 따로 운영할 때와 비교해 일체형 기술을 도입하면 전체 에너지 소비를 20%, 온실가스 배출은 30%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중 분산발전은 옥상온실의 실내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분산발전(건물 자체발전)으로 직접 열을 만드는 것 말고도 업무공간에서 버려지는 열도 함께 쓰는 방식이다.



옥상온실은 발광다이오드 조명을 활용해 식물의 생장을 돕는다. 사진 제공=한국기계연구원

식물 광합성에 필요한 이산화탄소와 물도 물론 아래층의 업무공간에서 최대한 충당한다. 화단의 식물들은 톱밥 같은 흙과 급수관을 통해 이산화탄소와 물을 공급받는다. 햇빛은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대신한다. LED는 주로 보랏빛이지만 파란빛과 노란빛도 내리쬔다. 식물 종류나 생장 단계별로 가장 효율적인 파장의 빛을 골라 쬐고 있다는 게 기계연의 설명이다. 온실 한켠에는 일종의 실외기와 환풍기가 돌아가며 ‘우웅’ 소리를 냈지만 소음으로 느낄 만한 수준은 아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오피스빌딩에 지어진 건물 일체형 옥상온실 전경. 사진 제공=한국기계연구원

옥상온실은 미국과 유럽 등 해외에서 일부 상용화했지만 성수동 시설은 다중 분산발전을 비롯해 고성능의 건물용 연료전지, 온실의 열 교환 조절이 가능한 세계 최고 수준의 액티브(능동형) 에너지 교환 기술 등을 통해 에너지 효율을 더 끌어올렸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기계연 측은 강조했다. 기계연은 성수동에 이어 서울 강서구 메이필드호텔 등으로 상용화 범위를 넓혀나갈 계획이다. 특히 이번 실증 사례처럼 파프리카, 오크라, 서양가지 등 다품종 소량생산이 필요한 작물 위주로 길러 도시 수요를 충족할 방침이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오피스빌딩에 지어진 건물 일체형 옥상온실에서 자라는 식물. 가느다란 관을 통해 물과 영양액을 공급받는다. 사진 제공=한국기계연구원

다만 상용화를 위해서는 규제 완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 연구원은 “건축법에 따라 무거운 유리재질로 짓느라 옥상온실 구축 비용이 더 들 수밖에 없었다”며 “온실은 더 가벼운 원자재를 써도 안정하기 때문에 건축법 규제가 풀린다면 비용 절감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상진 기계연구원장은 “공간이 부족한 도시에서 유휴공간인 옥상을 활용해 고부가 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면서 “도시농업을 확산하는 동시에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는 미래 융합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