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 논란에도 술보다 비싸더니…숙취해소제 '호갱' 사라질까 [약 읽어주는 안경진 기자]

1992년 '컨디션' 발매 이후 30년새 2000억 원대 시장 형성
편의점 등 판매 제품 대부분은 의약품 아닌 ‘일반음료’ 분류
숙취해소제 효능 논란 지속되자…식약처, 검증 나서기로

숙취는 알코올 음료를 복용한 후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나타나는 불쾌한 경험을 통칭한다. 이미지투데이

깨노니, 취트키, 취한저격, 용의주도, 출근환, 삽간흥, 다깼지, 좌우지간애.


위에서 나열한 제품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만약 ‘숙취해소제’를 떠올리는 데 10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면 애주가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반가운 지인들과의 술자리를 앞두고 편의점에 들렀을 때 눈길이 멈추는 곳이 있으신가요? 저는 습관적으로 숙취해소제 코너를 둘러보곤 합니다. 요즘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신제품이 쏟아지는데 음료 외에도 환, 젤리 등 다양한 형태의 제품이 늘어나며 고르는 재미까지 생겼습니다. 작명센스는 어찌나 기가 막힌지 절로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숙취는 알코올 음료를 복용한 후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나타나는 불쾌한 경험을 통칭하는 용어입니다. 두통, 메스꺼움, 구토, 구갈(갈증이 심해 다량의 물이 마시고 싶은 증세), 현기증, 근육통 등의 증상을 동반하는데 매번 경중이나 지속시간도 천차만별이죠. 과음한 다음날 끔찍한 숙취에 시달리고 나면 “다신 술을 안먹겠다”고 굳게 다짐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요? 지친 퇴근길 ‘한잔 하자는 카카오톡 메시지 한 통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발걸음을 돌리게 됩니다. 그런 날은 더욱 숙취해소제의 효능을 간절히 믿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국내 숙취해소제 시장의 포문을 연 건 HK이노엔(195940)(옛 제일제당)이 1992년에 발매한 ‘컨디션’입니다. “접대가 많은 비즈니스맨을 위한 쌀눈발효 드링크”라는 감성 문구로 직장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발매 1년 만에 1000만 병이 팔릴 정도로 돌풍을 일으켰다고 해요. 컨디션이 국내 숙취해소제 시장을 연간 2000억 원 규모로 키워낸 일등공신이라는 건 부인하기 힘든 사실입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순) 제약사가 판매 중인 숙취해소제 ‘깨노니’·'모닝케어 간솔루션'·'컨디션 스틱'·'컨디션 환' 제품 사진. 사진 제공=각사.

그럼에도 숙취해소제의 효능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드링크제 기준 5000~6000원을 호가하는 가격 탓에 “비싼 설탕물”이란 비판적 시각도 적지 않죠. 아직까지 알코올이 숙취를 일으키는 기전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알코올이 체내에서 대사될 때 생기는 중간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데 이 물질은 독성이 있어서 메스꺼움과 구토를 유발합니다. 두통도 아세트알데히드를 해독하기 위해 혈관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증상이죠. 숙취해소라는 라벨을 붙여 판매 중인 제품은 대부분 이 물질을 분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알려진 성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타우린, 헛개나무 열매추출물, 나이아신 등 일반인들에게도 제법 친숙한 성분이죠.


그 밖에 체내 수분과 포도당 부족, 호르몬 불균형, 숙면 부족 등도 숙취의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수분과 당분을 채워주면 숙취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겠죠? TV드라마에서 술 마신 다음날 꿀물을 타다 주는 장면이 어김없이 등장했던 데는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실제 시판 중인 숙취해소제의 당분 함량은 9~10% 정도로 꽤 높거든요. 당뇨병 등으로 혈당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면 복용에 신중을 기하는 게 좋습니다.


사실 그동안 이 코너에서 숙취해소제를 다루길 망설였던 이유가 있는데요. 마트나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숙취해소제는 의약품이 아니거든요. 현재로선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숙취해소 기능을 인정받은 원료 자체가 없다보니 건강기능식품도 아닌 ‘일반식품’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약국에서만 판매하는 숙취해소제를 복용한 경험이 있는 분들도 계실 거에요. 삼두해정탕 성분의 음료가 일반의약품으로 허가를 받았거든요. 삼두해정탕은 동의보감에 수록된 처방에 근거해 만들어진 생약 제제입니다. 흔히 숙취해소 용도로 판매되는데 실제 식약처 인정을 받은 효능은 과음으로 인한 소화기능장애와 음주로 인한 구토, 목마름, 두통입니다. 이를 제외하면 간기능 보조 등의 효능을 인정 받은 제품이 판매되는 정도라 숙취해소 효능에 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던 실정이죠.


결국 식약처가 팔을 걷어 붙였습니다. 올해 6월 ‘숙취해소 표시·광고 실증을 위한 인체적용시험 가이드라인’을 발간하고 2025년부터 식약처가 인정하는 범위의 인체적용시험을 통해 효능을 입증해야만 숙취해소 기능 표기가 가능하다고 못박았거든요. 제도 시행이 1년 남짓 남으면서 관련 제품을 보유한 기업들은 시험 준비로 분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HK이노엔은 일찌감치 자체 브랜드 강화를 위해 음료 제형인 ‘컨디션헛개’의 인체적용시험을 진행하고 규제 인증에 대한 준비를 대부분 마쳤다고 해요. 컨디션 사례를 참고할 때 대형 제품들은 무난히 인증 절차를 통과할 것이란 전망인데 알코올 해독능력은 개인차가 크고 건강상태에도 영향을 받는 만큼 효능 검증이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2024년 이후 숙취해소 효능을 입증하지 못한 제품들이 정리되면 ‘호갱님’이 될 걱정도 덜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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