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맛' 홍수 속 순애보로 승부 건 '연인'…클래식은 영원하다[현혜선의 시스루]

[리뷰] MBC 금토드라마 '연인'
시청률·화제성 두 마리 토끼 잡으며 종영


드라마, 예능의 속살을 현혜선 방송 담당 기자의 시점으로 들여다봅니다.


'연인' 스틸 / 사진=MBC

지난 8월 첫 방송된 '연인'이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지상파 드라마가 유독 주목 받지 못한 올해, MBC는 '연인'으로 유일하게 쾌재를 부를 수 있었다. '연인'이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MBC 금토드라마 '연인'(극본 황진영/연출 김성용)은 병자호란을 겪으며 엇갈리는 연인들의 사랑과 백성들의 생명력을 다룬 휴먼역사멜로 드라마다. 최종회에서 이장현(남궁민)과 유길채(안은진)는 앞으로 함께 어떻게 살고 싶은지 이야기했지만, 행복은 짧았다. 인조(김종태)가 소현세자(김무준)가 독살당했다는 소문에 또다시 의심을 키우며 장철(문성근)에게 역도들을 뿌리 뽑으라 명한 것. 장철에게 가장 중요한 건 가문의 위신이었다. 아들인 이장현이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자 제자 남연준(이학주)에게 이장현을 죽이라고 명했다. 위기를 감지한 이장현은 유길채에게 포로들과 능군리로 떠나라고 했고, 유길채는 따라온다는 이장현을 믿고 능군리로 향했다.


이장현은 바닷가에서 홀로 수십의 사내들과 대적했다. 이장현의 뒤로 수많은 화살이 쏟아졌고, 남연준은 인조 앞에서 이장현과 역도 무리들을 모두 죽였다고 말했다. 이장현은 기억을 잃은 채 살아남았다. 먼 길을 돌아 이장현이 있는 곳을 찾아온 유길채는 살아있는 이장현을 보며 눈물 흘렸다. 유길채는 이장현에게 은가락지를 꺼내며 "서방님. 길채가 왔어요"라고 말했고, 그 순간 기억을 되찾은 이장현은 눈시울을 붉히며 "기다렸어. 그대를. 여기서. 아주 오래"라고 말했다. 그렇게 죽음 위기를 넘고 먼 길을 돌고 돌아 재회한 두 사람이 서로를 끌어안은 애절한 모습으로 마무리됐다.


따지고 보면 연인은 트렌드를 따르기 보다는 '옛날 드라마'에 가깝다. 모든 게 빠르게 변하고 있는 시대, 미드폼, 숏폼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는 지금이다. 각종 드라마들도 12부작, 주 1회 방송 등으로 회차를 줄이면서 변화에 발맞추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연인'은 21부작의 긴 호흡으로 작품을 선보였다. 이제는 '촌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목숨을 건 사랑 이야기가 드라마의 중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인’은 시청자들을 완전히 휘어잡았다.



'연인' 스틸 / 사진=MBC

◇ 화제성 1위…시청률의 무덤에서 '연인'만 살았다 = '연인'은 시청률 5.4%(이하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으로 시작해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최종회는 최고 시청률 12.9%를 경신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기도 했다. 지난 13일 발표한 TV화제성 분석 기관 굿데이터코퍼레이션에 따르면 '연인'은 드라마와 OTT 토합 화제성 1위, 드라마와 비드라마 전체 프로그램 화제성 1위를 차지했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 출연자 화제성에서도 주연인 남궁민이 2주 연속 1위, 안은진이 3위에 이름을 올렸다. 화제성과 시청률,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야심차게 선보인 지상파 드라마들이 줄줄이 처참한 성적표를 받은 가운데 ‘연인’의 성적은 괄목할 만한하다. 올해 지상파 드라마는 대부분 시청률 4% 미만을 기록하며 조용히 퇴장했다. 그나마 SBS '모범택시2', '낭만닥터 김사부3' 등이 시청률 10%를 넘긴 상황. MBC도 '연인'이 등장하기 전까지 시청률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연인'이 시청률과 화제성을 모두 잡으며 MBC의 체면을 살린 셈이다.



'연인' 스틸 / 사진=MBC

◇ 마라맛 홍수 속에 꺼내든 ‘순애보' 시청자 심장 저격했다 = '연인'이 이토록 사랑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본질적인 가치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도파민 중독', '도파민 디톡스'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요즘은 자극적인 것을 쫓은 세태다. 이에 발맞춰 '매운맛', '마라맛'을 강조한 콘텐츠인 '오징어 게임', '펜트하우스' 시리즈, '마스크걸' 등이 사랑 받아 왔다. '연인'은 이런 드라마와는 결이 다르다. 가슴 아픈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연인의 사랑을 심도 있게 다뤘고, 역사에서 외면 받은 인물들을 다뤄 호평을 얻었다. 단순한 자극이 아닌, 인물의 진한 감정과 관계에 집중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작품은 초반부터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황 작가가 해당 작품을 참고했다고 밝힌 만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향기는 작품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전을 향기가 난다는 건, 다시 말해 지금 시대에서는 촌스럽다고 여겨질 수 있는 '순애보적인 사랑'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이장현이 보여준 목숨을 건 미친 사랑의 이야기는 요즘 현대극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요즘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물에서 목숨을 건다는 건 거창하게 느껴지기 때문. 그러나 '연인'은 지독하게 거창하고, 숨이 막힐 듯이 아련하다. 촌스럽지만 그렇기에 순수하고 가장 원초적인 감정. 시청자들은 여기에 공감했고 몰입했다. 수세기 전의 고전이 여전히 통하는 이유다.



'연인' 스틸 / 사진=MBC

배우들의 열연도 한 몫했다. 작품에는 "노랑새야.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이 누구게?", "난 반드시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고 말 거라고", "기다렸지, 그대를. 여기서, 아주 오래" 등 자칫 느끼할 수 있는 대사들이 있었다. 이를 공감으로 이끈 건 배우들의 힘이다. 남궁민과 안은진은 열연을 펼치며 해당 대사들에 숨을 불어 넣었다. 남궁민은 자칫 과하게 표현될 수 있는 깊은 사랑의 감정을 섬세하게 전달했고, 안은진은 명랑한 사대부 아가씨의 모습부터, 전쟁을 겪으면서 강인해진 모습, 심양에 포로로 끌려가면서 겪는 고초 등 다양한 변화를 소화했다.


삶의 터전, 사랑하는 사람들, 평범한 일상 등 전쟁은 많은 것을 앗아간다. 400년 전의 병자호란도 그랬다. 이장현과 유길채는 명랑했던 일상을 잃고 파괴된 삶, 뒤바뀐 관계 속에서 살았다. 그안에서 '연인'이 놓치지 않은 건 사랑이라는 위대한 가치다. 사랑을 위한 아주 오랜 기다림, 기다림 끝에 흘린 이장현과 유길채의 눈물은 큰 울림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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