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과 관련해 폐지를 포함한 전면 재검토라는 깜짝 카드를 내놓은 것은 국민들의 세 부담과 시세 산정의 정확성 등 근본적인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논란의 소지가 큰 공시가 현실화 로드맵을 내놓는 데 대한 정부의 부담도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20일 열릴 공청회에서는 현실화율 목표치를 90%에서 80%로 낮추고 목표 달성 연도도 2040년까지 연장하는 등의 방안이 담긴 수정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이미 지난해 공청회를 통해 이 같은 로드맵을 만들겠다는 방향성을 제시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모두 뒤엎고 ‘폐지 혹은 전면 재검토’라는 결과가 나온 만큼 2024년 이후 적용할 공시가격 현실화율 로드맵 수정안에 대한 최종 결정 방향은 내년 이후로 연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장 내년 1월부터 적용되는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이달 중 발표한다.
부동산 공시가격은 조세·복지·보상·부담금 등 60여 개 제도에서 직간접적으로 활용되는 제도로 부처별로 나뉘어 있던 가격 체계를 일원화하기 위해 1989년 도입됐다. 현행 공시가격 현실화 제도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11월에 마련된 방안으로 공시가 현실화율을 지속적으로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동주택은 2025~2030년까지, 단독주택은 2027~2035년까지, 토지는 2028년까지 모두 현실화율을 90%로 끌어올리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 상승과 세율 인상 등이 동시에 영향을 미치면서 종부세와 보유세 등 국민 부담이 커진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는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재검토를 국정과제에 포함하고 올해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2020년 수준(69%)으로 낮추며 시간을 벌었다.
이날 국토교통부와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주최로 열린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관련 공청회에서 이유리 국토부 부동산평가과장은 “시세 반영률을 높인다는 목적을 두고 2년간 운영하면서 여러 문제점들이 파악됐다”며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하고 검토하면서 모든 대안들을 열어놓고 다시 생각을 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공시가격과 관련해서도 시세의 100%부터 30%까지 주장이 다양한 만큼 구체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논의를 더 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송경호 조세연 정보투자분석센터장도 “재산세·종부세에 대해 과표상한제와 보유세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공시가격 현실화율 로드맵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강춘남 태평양감정평가법인 감정평가사는 “현실화율은 공시가격 결정의 한 축”이라며 “정책이 추구하는 효율성 달성을 위해서도, 국민들의 예측 가능성을 위해서도 현실화 계획 로드맵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승용 법무법인 박앤정 대표변호사는 “지난 정부에서 공시지가를 시세화했던 것이 문제”라며 “과거 IMF나 리먼 사태처럼 부동산 하락기에 공시지가가 시세보다 높게 된 경우에는 조세를 어떻게 부담시킬 것인지 등의 문제도 발생하기 때문에 공시지가를 시가화시키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세 형평을 위해서는 부동산 유형별·지역별로 시세 반영률 자체는 일정 수준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로드맵을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다 쓰러져가는 한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소득인정액이 97만 원에서 300만 원대로 올라 기초수급대상에서 탈락하는일이있었다”며 “인위적 작업으로 공시가격이 시장과 괴리돼 증세의 도구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실화 로드맵이 조세 형평성 자체를 위배하는 만큼 시세를 추종하는 공시 체계는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와 조세연은 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내용들을 바탕으로 공시가 현실화율 재검토 방향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남영우 국토부 토지정책관은 “향후 논의에 따라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폐지하거나 새로운 로드맵을 발표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