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수십 년 만에 최대 규모의 ‘마피아 재판’이 진행돼 230명 이상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전직 대통령 법률고문을 지낸 상원의원 출신 인사를 포함해 다양한 정부 인사들도 마피아와 결탁한 혐의로 중형에 처해졌다. 법정에 선 피고인만 338명에 달하는 데다가, 판사들이 판결문을 읽는 데만 1시간 40분이 걸려 ‘세기의 재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2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주 비보 발렌티아 법원이 이날 이탈리아 최대 마피아 조직 ‘은드랑게타’와 조직원 및 조력자 230여 명에게 유죄를 선고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은드랑게타에 가입하거나 연루돼 마약 밀매, 갈취, 뇌물 수수, 절도 등의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는다. 나머지 피고인 100여 명은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은드랑게타는 칼라브리아주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이탈리아 최대 마피아 조직이다. 서아프리카에서 남미까지 퍼져 있는 2만 여명의 조직원을 기반 삼아 유럽의 불법 코카인 거래망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 이들이 마약 밀매, 고리대금업을 통해 내는 매출은 연간 500억 유로(약 67조 원) 이상인 것으로 추산된다. 이탈리아 경찰은 2019년 특별 작전을 펼쳐 338명을 재판에 넘겼고, 법원은 2021년 1월부터 2년 10개월간 심리를 진행했다.
가장 무거운 처벌은 은드랑게타의 작은 보스인 사베리오 라치오날레와 도메니코 보나보타에게 주어졌다. 이들은 나란히 징역 30년형을 선고받았다. ‘늑대’ ‘뚱땡이’ ‘음악가’라는 별명을 가진 다른 은드랑게타 조직원들도 17~28년형의 징역형에 처해졌다. ‘삼촌’으로 불리는 은드랑게타의 최고 보스 루이지 만쿠소는 별도의 재판을 받고 있어 이번 재판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전직 정부 인사와 화이트칼라 인사들도 중형을 피하지 못했다. 검찰은 공판 과정에서 전문가 네트워크와 은드랑게타의 연관성을 입증하는 데 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결과 전 상원의원이자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의 법률고문을 지냈던 잔카를로 피텔리가 징역 11년형을 선고받았다. ‘마피아의 해결사’로도 불리는 그는 은드랑게타와 결탁해 각종 정보를 제공한 혐의를 받는다. 이탈리아 군사경찰대 중령을 지낸 조르조 나셀리는 2년 6개월, 전직 경찰관 미켈레 마리나로는 10년 6개월의 징역형이 선고됐다.
다만 이날 선고는 검찰의 구형량에는 못 미쳐 검찰이 항소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이날 재판은 특수 제작된 벙커 형태의 법정에서 열렸으며, 참석자들이 멀리서도 재판을 볼 수 있도록 천장 곳곳에 모니터가 설치됐다.
이날 재판은 이탈리아에서 약 30년 만에 최대 규모의 마피아 재판이다. 역대 가장 큰 마피아 재판은 시칠리아 마피아 465명을 대상으로 1986년부터 1992년까지 약 6년간 진행된 재판이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