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환경 속에 우리나라 가계 신용(빚) 규모가 2분기 연속 늘어나면서 다시 1870조 원을 돌파해 사상 최대로 불어났다. 정부의 특례보금자리론이 촉발한 ‘빚 내서 집 사자’ 심리가 주택 매입으로 이어지면서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역대 최대로 늘었기 때문이다. 주택 매수로 인한 부채 증가세가 지속되면서 가계 신용이 통화정책의 주요 변수 중 하나로 떠올랐다.
21일 한국은행은 올해 3분기 말 가계 신용 잔액이 1875조 6000억 원으로 전 분기 말 대비 14조 3000억 원 증가했다고 밝혔다. 2021년 4분기(17조 4000억 원) 이후 1년 9개월 만의 최대 증가 폭이다. 잔액은 지난해 3분기 이후 1년 만에 1870조 원을 돌파하면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가계 신용은 일반 가계에 대한 금융기관 대출(가계대출)과 신용카드 등 외상 거래를 의미하는 판매 신용을 합친 개념이다.
가계 신용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계대출 잔액은 11조 7000억 원 증가한 1759조 1000억 원을 기록했다. 마찬가지로 역대 최대다. 가계대출의 절반 이상인 주택담보대출도 17조 3000억 원 늘어난 1049조 1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로 불어났기 때문이다. 반면 신용대출 등 기타 대출은 5조 5000억 원 줄었는데 8분기 연속 감소세다. 한은은 가계대출이 늘어난 대부분을 주택담보대출의 영향으로 풀이했다. 주택 매매 관련 자금 수요가 늘어나면서 특례보금자리론 등 정책 모기지 취급, 개별 주택담보대출 등을 중심으로 대출 증가 폭이 확대됐다는 것이다.
판매 신용 잔액은 116조 6000억 원으로 전 분기보다 2조 6000억 원 늘면서 3분기 만에 증가 전환했다. 여행과 여가 수요가 늘면서 신용카드 이용액도 늘었기 때문이다. 3분기 개인 신용카드 이용액은 186조 9000억 원으로 전 분기보다 4조 6000억 원 증가했다.
문제는 국내 가계부채가 이미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한국의 3분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0.2%로 조사 대상 34개국 가운데 1위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80%를 넘으면 성장률이 낮아지고 경기 침체 발생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 이미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부채 부담이 소비 등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지적을 제기한다.
고금리 국면에서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을 거치지 않고 가계부채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향후 통화정책 운용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물가가 안정되고 경기가 어려울 때 금리를 내리고 싶어도 가계부채를 자극할 가능성을 고려하다 실기(失期)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은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예외 대상을 점진적으로 축소하는 등 거시 건전성 정책을 통해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적정 수준까지 떨어뜨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주택 매수세나 10월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 규모(6조 8000억 원) 등을 감안하면 가계부채 증가세는 4분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정부가 9월 특례보금자리론 일반형 공급을 중단하는 등 관리에 나선 만큼 부채 증가세가 속도를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가계부채 흐름은 부동산 경기와 맞물려 있는 만큼 한은도 이를 주시하고 있다. 서정석 한은 금융통계팀장은 “최근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승 부담으로 주택 시장 관망세가 확산하고 있고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 강화 효과가 시차를 두고 나타나면서 가계대출이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