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고금리에도 체질 개선은 뒷전


“대출 없는 자영업자가 어디 있냐, 내 몸 갈아서 버티는 거지.”


경기도의 한 중소도시에서 5년째 고깃집을 운영하는 친구가 얼마 전 한탄했다. 고금리·고물가 부담이 갈수록 커지는데 주 고객층이 비용에 민감해 가격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간신히 이자만 내며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기준금리가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연 3.50%인 상황이 1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고금리가 점차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은행이 조사하는 소비자심리지수는 석 달 연속 하락하며 부정적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반도체 수출이 살아나 성장률만 보면 경제가 회복되는 것 같아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은 점점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물가 목표 2%에 수렴하기까지 고금리 고통은 길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고금리가 고통만 안겨주는 것은 아니다.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이나 좀비기업 퇴출 등으로 생산성을 높인다면 체질 개선을 이뤄낼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장은 힘들어도 다시 뛰기 위해 몸을 가볍게 만들어놓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이번 고금리 국면에서 디레버리징을 사실상 건너뛰었다는 것이다.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1.7%인데, 회계 기준 변경 효과를 걷어내면 104.0%다. 역대 최고치인 105.6%(2021년 9월)에서 1.6%포인트 줄이는 데 그쳤다. 이마저도 다시 늘어난다. 올 3분기 가계 신용 잔액은 1875조 6000억 원으로 3개월 만에 14조 원 넘게 증가해 역대 최대를 경신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GDP 대비 부채비율이 100%를 넘었던 국가 가운데 노르웨이(112.9%→78.7%), 덴마크(110.4%→84.4%), 호주(122.0%→110.6%), 캐나다(111.7%→101.9%) 등은 불과 2년 만에 눈에 띄는 디레버리징을 이뤄냈다.


당국과 한은은 중장기적으로 디레버리징을 한다지만 부동산 경기에 따라 태도는 또 바뀔 가능성이 있다. 줄여야 할 때 줄이지 못한 부채는 앞으로 정책 운영 과정에서 계속 발목을 잡을 것이다. ‘고통 없이 얻는 것도 없다(No pain, No gain)’는데 이러다 ‘고통만 겪고 얻는 것은 없다(Only pain, No gain)’가 될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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