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치열했던 1979년 12월 속으로

■영화 '서울의 봄'
12·12사태 9시간의 실화 토대로
신군부와 진압군 사이 갈등 그려
개봉 첫날 20만 관람, 점유율 73%

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사진 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1979년 10월 대한민국을 철권통치하던 독재자 대통령이 사망했다. 어수선한 시국을 틈타 육군 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 분)’은 국가 권력을 움켜쥐기 위한 음모를 꾸민다. 군부내 사모임 ‘하나회’를 이용해 눈엣가시 같은 육군참모총장 ‘정상호(이성민 분)’를 납치하고 이에 대한 후임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내 군사반란(쿠데타)의 명분을 얻으려던 것이다.


당시 보안사는 국내 모든 정보를 쥐락펴락할 정도로 위세 등등한 조직이었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반란군의 앞을 가로막은 이들이 있었다. 12월 12일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정우성 분)’은 조국을 지키기 위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 12·12 사태를 토대로 신군부의 군사반란이 벌어진 9시간을 조명한다. 영화는 현대사 속에서 익히 알려진 실존인물을 빌려오되 이름을 변형해 연출을 맡은 김성수 감독의 상상력을 더했다. 김 감독은 관련 인터뷰에서 “실존인물들의 이름을 쓰고 싶지 않았다”면서 “역사를 재현하는 게 아니라 역사에서 느낀 바를 내 생각으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로부터 출발해서 이야기를 맘껏 펼치려고 했다”고 밝혔다.


이태신을 맡은 정우성은 “감독님은 그 누구도 무고할 수 없다는 자세로 인간을 다룬다. 그 점을 좇아가려 했다”면서 “이태신의 선택에 의미 부여를 하기보다는 본분을 지키려고 하는 그의 소신을 담아내려 했다”고 말했다.



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사진 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군사반란 과정에서 서울의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총격전을 비추기도 한다. 이는 김 감독의 어린 시절 실제 경험이라고도 한다. 그는 “고3 시절 한남동에서 우연히 장갑차를 보고 쫓아갔는데 총소리가 났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199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그날의 진실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12·12 사태는 1980년 ‘서울의 봄’과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쳐 1987년 6월까지 피와 땀이 어린 민주화 운동의 시발점이 됐다. 김 감독은 “우리들의 삶에 이렇게 큰 여파를 입힌 9시간이 있을까 싶어 이야기에 빠져들게 됐다”면서 “욕망이 모여 커다란 탐욕이 되면 사람들도 탐욕에 삼켜지게 된다.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한편 영화 ‘서울의 봄’은 개봉 첫 날인 22일 20만 명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전체 점유율이 무려 73%를 기록했다.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박진감 넘치는 전개와 배우들의 호연, 과잉되지 않은 연출로 호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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