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정적 응징' 공언하는 트럼프

캐서린 람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정적 제거' 발언은 잡담 아닌 공약
재임때도 반대편 보복 서슴지 않아
'충성심' 심사로 차기 예비내각 인선
유권자, '재집권 후' 유념해 선택해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집권할 경우 공권력을 동원해 정적들을 벌주겠다고 여러 차례에 걸쳐 공언했다. 유권자들이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야 할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그는 전에도 특정 개인과 단체 및 기업을 향해 공권력을 행사한 바 있다. 당시 그의 전횡에 제동을 건 것은 법원의 판결과 참모들의 비협조였다. 둘째, 지금 그는 재집권 후 정적 제거의 토대가 될 인적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그는 지난주 유니비전과의 인터뷰에서 백악관에 재입성하면 자신의 반대편에 섰던 적들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연방수사국(FBI)을 비롯한 법무부의 기구들을 총동원해 그를 박해한 정적들에게 보복하겠다며 “나를 심하게 핍박한 사람들을 샅샅이 조사해 기소할 것이고, 그들은 업계와 정계에서 모두 밀려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는 그로부터 며칠 후 재향군인의 날 연설에서도 “대통령에 당선되면 공산주의자·마르크스주의자·파시스트와 급진 좌파 폭력배 등 이 나라의 모든 해충을 박멸하겠다”고 밝혔다. ‘해충’ 발언은 순간적인 충동에서 비롯된 말 실수가 아니다. 그는 소셜미디어에도 동일한 견해를 남겼다.


과거 독재자들이 눈에 거슬리는 집단을 해충에 비유했던 전례를 돌이켜보면 그의 발언은 소름이 돋는다.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자신에게 쏠리는 관심을 지지율 성장 동력으로 활용하는 그의 특성상 그가 내뱉은 발언의 추악함을 목청 높여 알리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재집권 후 그가 달성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의 발언은 ‘속이 빈 협박’이거나 비슷한 성향의 남성들이 사적인 공간에서 나누는 ‘은밀한 잡담’이 아니다. 그의 발언은 선거 공약이고 당연히 그렇게 취급돼야 한다.


그의 발언이 빈말인지 아닌지 알고 싶다면 대통령 재임 때의 행적을 살펴보라. 올해 초 그의 비서실장이던 존 켈리는 진술서에서 국세청(IRS)을 비롯한 연방 기관들을 동원해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선거 캠프와 러시아 사이의 관계를 조사한 두 명의 FBI 관리를 혼내주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존 브레넌 전 중앙정보부(CIA) 국장, 힐러리 클린턴과 아마존 창업주이자 워싱턴 포스트 소유주인 제프 베이조스 등 그가 적대시하는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감사와 FBI의 수사를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또 정부의 막강한 행정력을 이용해 충성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여겨지는 기업들을 규제했다. 일부 자동차 제조사들이 연료 효율성 표준을 이전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데 반대하자 트럼프 행정부는 느닷없이 단합 금지 규정 위반 혐의로 이들을 조사했다. 그는 정부의 물품 조달 과정에서 아마존에 타격을 입히려 하기도 했다. 짐 마티스 당시 국방장관의 최고위 참모는 후일 회고록을 통해 “트럼프가 마티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아마존을 국방부의 납품 계약 경쟁입찰 과정에서 제외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좌경화된 판사들과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국정 농단 세력, 즉 ‘딥 스테이트’가 자신을 가로막았다고 주장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집권에 성공할 경우 1차 재임 중 그가 직접 임명한 수백 명의 판사들이 ‘사법 호위무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는 또 자신의 야망을 효율적으로 실현하는 데 앞장설 차기 예비 내각의 인력 확보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재집권할 경우 전 행정부가 미처 끝내지 못한 작업을 일사천리로 밀어붙이려는 준비 작업을 착착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에 대비해 최측근 보좌관들을 주축으로 우익 단체들이 연합해 조직한 ‘프로젝트 2025’는 수천 명에 달하는 ‘일꾼’들의 이념과 충성심을 사전 심사하고 있다. 사전 인선 작업에 나선 보수 단체들은 그에게 고언을 들려줄 ‘집안의 어른’을 찾으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이들이 벌이는 인적 인프라 구축 작업은 그의 독재자 성향을 역겨워하기는커녕 이를 반기고 열광하는 하수인들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그의 탈선을 막을 가드레일을 만드는 게 아니라 폭주하는 열차의 바퀴에 기름칠을 할 일꾼이 이들이 찾는 2차 트럼프 행정부의 공무원이다.


내년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선택하는 유권자들은 바로 이런 정부를 선택하게 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