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네트워크 장비인 라우터(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연결해주는 장치)의 포트 불량을 지난 17일 행정전산망이 먹통이 됐던 원인으로 최종 결론냈다. 콘센트를 꽂았는데 전기가 통하지 않는 식의 문제로 인해 데이터 전송이 제대로 안돼 민원 대란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지난 19일 행정안전부가 발표했던 L4(네트워크 장비의 일종) 스위치의 문제는 없었다. 다만 노후화는 아니라면서도 ‘라우터의 정확한 고장 원인은 알 수 없다’, 이중화가 제대로 가동 안됐는데도 ‘이중화 작업이 다 돼있다’는 등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 구석도 적지 않다. 또 다시 단순 장비 고장으로 전산망 장애 사태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철저한 사전 감시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행안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5일 이러한 내용의 '지방행정전산서비스 장애 원인 및 향후 대책' 브리핑을 열었다. 민간 전문가와 함께 지방행정전산서비스 개편 태스크포스(TF)를 꾸려 8일 만에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TF는 당초 문제로 지목됐던 L4 스위치 교체 이후에도 일부 지연 현상이 발견돼 라우터를 분석해보니 케이블을 꽂는 포트에 이상이 있는 걸 확인했다. 한글 750자(1500바이트) 이상의 데이터를 보내면 제대로 전달해주지 못하고 패킷(데이터의 전송단위) 90%이상이 사라져버려, 전산망이 먹통이 된 것이다. 송상효 숭실대 교수(TF 공동팀장)은 “다양한 시나리오 상황에서 네트워크 영역에서의 접속 지연 및 이상 유무 확인 과정을 거쳤으나, 라우터 장비의 불량 외에는 다른 이상 현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검증 과정을 거치느라 장애 발생 이후 8일 후에 원인을 발표했다는 설명이다.
TF는 전산망 마비 사태 전날 했던 OS 업데이트는 원인이 아니라고 봤다. 해킹 징후도 없었다. 또 그 이후 발생했던 주민등록시스템, 나라장터, 모바일 신분증 등 세 차례의 정부망 장애 역시 라우터 고장이 미친 영향은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고장의 원인은 찾지 못했다. 노후화는 아니었다. 이재용 국가정보자원관리원장은 “물리적인 부품의 손상이기 때문에 원인을 밝혀내기는 상당히 어렵다“면서 ”2016년 도입돼 사용기한이 만료되지 않은 장비로, 노후화가 장비 고장의 원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시스템 모니터링과 육안 점검 등을 매일 진행하지만, 장비 고장은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작 시스템 이중화 기능이 가동되지 않았음에도 TF는 이중화 구성은 적절하게 다 돼있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송 교수는 “이중화는 한 시스템의 장비가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을 경우 그 작동을 대신하는 구조"라며 “이번 경우 일부 모듈에 이상이 생긴 것이지 전체 장비가 비정상적으로 작동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중화가 제대로 작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쪽이 에러나면 다른 쪽이 감지해 동작을 해야하는 문제를 이렇게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인지 이해가 안된다는 반응이다.
이 장비는 미국 ‘시스코 시스템즈’가 제조했고 대신정보통신이 관리한다. 일각에서는 장비 고장이 원인인 만큼 시스코에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행안부 관계자는 “법적으로 보상과 배상 문제에 대해 내부적으로 따져보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토요일 오후에 기습적으로 발표했다는 점, 책임자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부산에서 열린 디지털플랫폼정부 관련 행사에 참석해 전자정부 구축 성과를 자랑했다는 점도 비판을 받고 있다.
문제는 또다시 같은 고장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물리적으로만 이중화를 해놓고 고장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었다는 건 복불복이라는 것"이라며 “네트워크 장비를 관리, 유지, 보수하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재발을 막기 위해 유사한 불량이 있을 수 있는 오래된 장비들에 대해 전수 점검할 계획이다. 아울러 장애 징후를 빨리 포착할 수 있도록 중요 서비스 시스템과 연관 장비들에 대한 통합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고 상설장애대응반을 구성해 신속한 복구 조치가 가능한 체계를 마련하기로 했다. 염흥열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정부 내에 관리 인력을 확충해 네트워크 장애가 발생했을 때 곧바로 찾아낼 수 있는 관리 기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